월가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어 온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에서 투자자 자금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형 펀드에서 환매 요청이 급증하면서 운용사들이 지급을 제한하는 등 업계의 성장 모델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최근 사례는 미국 자산운용사 클리프워터(Cliffwater)다. 이 회사는 12일 투자자들에게 자사의 최대 펀드에서 이번 분기 투자금의 14%에 해당하는 환매 요청이 들어왔다고 통보했다. 규모는 약 330억 달러 펀드다.

그러나 펀드는 요청된 금액의 약 50%만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절반의 투자자들은 최소 다음 분기까지 기다려야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개인 투자자 자금에 의존했던 사모대출 모델

클리프워터는 펀드를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판매해 왔다. 이 전략은 이후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Apollo Global Management), 블랙록(BlackRock), 블랙스톤(Blackstone), 블루 아울(Blue Owl) 등 대형 경쟁사들도 따라 하며 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클리프워터
(클리프워터 웹사이트 표지. 웹사이트)

이들 운용사는 더 나아가 퇴직연금인 401(k) 자금까지 끌어들이려 하며 개인 투자 시장 확대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최근 몇 달 사이 이 전략이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고 있다. 일부 사모대출과 은행 대출에서 부실 사례가 발생하면서 추가 손실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먼저 빠져나가야 한다"는 심리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운용사 주가 급락...은행들도 위험 재평가

사모대출 시장의 긴장감은 금융시장에도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모대출 전문 운용사 블루 아울(Blue Owl) 주가는 올해 들어 40% 이상 하락했다.

또한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등 은행들도 사모대출 시장에 대한 노출 위험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대형 펀드가 분기별 환매 한도를 설정하고 있어 단기간에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러나 자금 유출이 계속될 경우 장기적인 압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2022년 부동산 펀드에서 발생했던 자금 유출과 비슷한 패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에도 투자자 환매가 수개월에 걸쳐 이어지며 회복까지 수년이 걸렸다.

신규 자금 유입도 둔화

문제는 환매뿐만이 아니다.

최근 신규 투자 자금 유입도 둔화되고 있어 운용사들의 미래 수수료 수익 전망이 낮아지고 있다. 이 역시 관련 기업 주가 하락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또한 사모대출 펀드들이 위기 시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인 CLO(대출담보부증권)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산탄데르 미국 캐피털마켓(Santander U.S. Capital Markets)에 따르면 고수익 CLO 채권은 2월에 4.1% 하락하며 최근 상승 흐름이 급격히 꺾였다.

일부 펀드는 환매 한도 확대

운용사들은 투자자 환매 요구와 펀드 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고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블루 아울은 기술기업 대출에 투자하는 사모대출 펀드에서 기존 5% 환매 한도를 15%로 확대했다.

업계 최대 규모인 820억 달러의 블랙스톤(Blackstone) 신용 펀드 역시 처음으로 **순유출(순환매)**이 발생했으며 약 8% 환매를 허용했다.

반면 블랙록(BlackRock)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는 환매 요청이 더 많았음에도 정해진 5% 한도만 지급했다.

"사모대출 시장의 첫 도미노 될 수도"

일부 투자자들은 이번 사태를 업계 전반의 경고 신호로 보고 있다.

헤지펀드 루브릭 캐피털 매니지먼트(Rubric Capital Management)의 매니저 데이비드 로젠(David Rosen)은 최근 투자자 서한에서 클리프워터 사례를 "광산의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그는 "클리프워터가 우리가 예상하는 '사모대출 뱅크런'의 첫 번째 도미노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은행 노출 규모 1.2조 달러

사모대출 시장과 은행권의 연결도 점점 커지고 있다.

무디스 레이팅스(Moody's Ratings)에 따르면 은행이 비은행 금융기관(사모대출 포함)에 제공한 대출은 지난해 중반 기준 1조20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10년 전의 거의 세 배 수준이다.

일부 은행은 이미 대응에 나섰다. 예를 들어 JP모건은 소프트웨어 기업 대출 가치가 하락하자 일부 사모대출 펀드에 제공하던 신용한도를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직 시스템적 위기는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개인 투자자 자금에 크게 의존했던 사모대출 시장이 새로운 시험대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