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영국 총리가 노동당 내 최대 경쟁자로 떠오른 앤디 버넘(Andy Burnham)의 압승 이후에도 총리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며 지도부 도전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버넘은 잉글랜드 북서부 메이커필드(Makerfield) 보궐선거에서 노동당 후보로 출마해 큰 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번 승리로 그는 하원의원 자격을 확보하면서 스타머 총리에게 공식적으로 지도부 도전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버넘은 그동안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을 맡아왔으며, 노동당 대표 경선이 열릴 경우 출마하겠다는 뜻을 내비쳐왔다.

 앤디 버넘(Andy Burnham)
( 앤디 버넘(Andy Burnham). Instagram)

스타머 총리는 19일 기자들과 만나 "지도부 경선이 열린다면 출마할 것"이라며 "나는 물러나지 않겠다고 반복해서 말해왔다"고 밝혔다.

버넘, 54.8% 득표로 개혁당 후보 제쳐

버넘은 메이커필드 보궐선거에서 54.8%를 득표했다.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가 이끄는 우익 포퓰리즘 정당 개혁영국당(Reform UK) 후보는 34.5%를 얻었다.

버넘의 압승은 노동당이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혁영국당에 밀리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이에 따라 버넘은 개혁영국당의 상승세를 막을 수 있는 노동당의 유력 대안 지도자로 부상했다.

일부 노동당 의원들은 이번 선거 결과가 스타머 총리에게 질서 있게 권력을 넘길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스타머 총리가 퇴진하고 버넘이 총리직을 이어받게 되면 영국은 10여 년 만에 일곱 번째 총리를 맞게 된다. 이는 거의 200년 만에 가장 잦은 총리 교체다.

잦은 지도부 교체는 생활수준과 공공서비스 개선, 불법 이민 문제 해결에 실패한 역대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반영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타머 "당과 국가를 혼란에 빠뜨려서는 안 돼"

스타머 총리는 노동당 직원들과의 전화회의에서 지도부 경선이 당과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노동당이 내부 분열에 빠지는 대신 버넘이 떠난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직을 지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스타머 총리는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서로를 공격하고 당을 분열시켜 당과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그런 방식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개선, 경제 안정, 국민보건서비스(NHS) 대기시간 단축 등 자신의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을 열거하며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스타머는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압승을 이끌며 집권했다.

그러나 이후 정책 번복과 각종 논란, 결단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버넘, 승리 연설서 전국정책 제시

버넘은 승리 직후 지역 현안보다 국가 전체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연설을 했다.

노동당 의원들은 이를 사실상 총리 후보의 연설과 같은 모습으로 평가했다.

버넘은 "노동당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해왔다"며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붙잡고 제기된 도전에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비 부담 완화와 공공요금 인하, 제조업 부흥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버넘은 "이번이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잡을 것"이라며 "영국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연설은 노동당 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전국적인 지도자로서 자신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됐다.

의회 복귀로 지도부 도전 장애물 제거

56세인 버넘은 오랜 기간 노동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과거 하원의원과 보건장관을 지냈으며, 노동당 대표 선거에도 두 차례 출마한 경험이 있다.

버넘이 스타머에게 도전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하원의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노동당 대표가 되려면 원내 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고, 총리가 되려면 하원에서 활동하는 것이 사실상 필수적이다.

메이커필드 보궐선거 승리로 버넘은 하원에 복귀했으며, 지도부 경선에 나설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확보했다.

노동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버넘이 정식 지도부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나타났다.

노동당 의원 약 4분의 1, 스타머 퇴진 요구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이 큰 손실을 본 이후 소속 의원 약 4분의 1이 스타머 총리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넘의 보궐선거 승리 이후 퇴진을 요구하는 의원들은 더 늘어나고 있다.

국방장관과 보건장관을 비롯한 고위 각료들도 이미 사임했다.

일부 노동당 의원들은 스타머 총리에게 주말 동안 자신의 거취를 숙고하고 자진 사퇴를 검토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넘 측 인사인 루이즈 헤이그(Louise Haigh) 노동당 의원은 BBC에 "앞으로 며칠 안에 버넘과 총리가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지도부 경선을 피하고 싶다"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에 합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는 공개적인 당권 경쟁보다 스타머가 자진 사퇴하고 버넘에게 지도부를 넘기는 방안을 선호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노동당, 보수당의 지도부 혼란 재현 우려

스타머 총리가 자진 사퇴 요구를 거부할 경우 노동당 내부 갈등이 공개적인 지도부 경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당 의원들은 잦은 지도부 교체와 당내 분열로 집권 기반을 잃은 보수당의 사례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보수당은 집권 마지막 8년 동안 당 대표를 다섯 차례 교체했다. 총리 교체와 정책 혼란이 이어지면서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에 기록적인 패배를 당했다.

스타머 총리는 당내 경선이 노동당의 분열을 드러내고 정부 운영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반면 스타머의 낮은 지지율로는 차기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늦기 전에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개혁영국당 상승세가 노동당 위기 키워

노동당 의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개혁영국당의 급성장이다.

패라지가 이끄는 개혁영국당은 1년 넘게 여러 전국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노동당 의원 상당수는 2029년으로 예정된 차기 총선에서 개혁영국당 후보에게 자신의 지역구를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버넘은 메이커필드에서 개혁영국당 후보를 약 20%포인트 차이로 이기면서, 패라지의 상승세를 저지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

이번 승리는 노동당 의원들에게 지도부를 교체하면 차기 총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많은 노동당 의원은 현재 역대 영국 지도자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스타머 총리로는 2029년 총선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웨스 스트리팅도 지도부 도전 경고

버넘 외에도 스타머 총리의 당내 경쟁자들이 지도부 도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전 보건장관 웨스 스트리팅(Wes Streeting)은 이번 주 스타머 총리가 퇴진 시점을 밝히지 않을 경우 조만간 지도부 경선을 강제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스트리팅은 버넘의 압승이 노동당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버넘과 스트리팅 등이 동시에 지도부 경쟁에 나설 경우 노동당의 당권 구도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버넘이 노동당원과 의원들 사이에서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는 후보로 평가되고 있다.

지도부 경선 개시에는 의원 81명 필요

노동당 규정에 따르면 지도부 도전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려면 원내 노동당 의원의 20%가 한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

현재 기준으로는 의원 81명이 동일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해야 지도부 경선이 시작될 수 있다.

스타머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의원이 늘고 있지만, 버넘이 공식적으로 81명의 지지를 확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 경선을 시작하기보다는 스타머와 버넘이 협상을 통해 질서 있는 권력 이양에 합의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스타머 총리가 "물러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만큼, 타협 가능성은 아직 불확실하다.

버넘 승리로 스타머 리더십 최대 위기

버넘의 의회 복귀는 스타머 총리에게 집권 이후 가장 심각한 당내 위협으로 평가된다.

버넘은 노동당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고, 지방행정 경험과 중앙정부 장관 경험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개혁영국당을 큰 차이로 누르며 선거 경쟁력도 입증했다.

스타머 총리는 2024년 총선 압승과 정부 정책 성과를 근거로 임기를 완주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당 의원들이 차기 총선에서 의석을 잃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어, 당내 퇴진 압박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향후 며칠 동안 스타머와 버넘의 회동 여부, 노동당 의원들의 공개 지지 선언, 스트리팅 등 다른 경쟁자들의 움직임이 영국의 지도부 교체 가능성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