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가 소수의 인공지능 기업과 AI 모델에 기술과 경제적 가치가 집중되는 현재의 산업 구조를 비판했다.

나델라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AI 기업들이 일자리 감소와 안전 위험을 경고하면서도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과 자원 투입을 계속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사회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무직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고 AI가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모든 전력을 사용해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겠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소수의 기업과 모델이 "전 세계를 대신해 모든 학습을 수행하는" 구조를 대중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위키)

나델라는 특정 기업을 직접 지목하지 않았지만, 현재 가장 발전된 독점 AI 모델을 개발하는 오픈AI(OpenAI)와 앤스로픽(Anthropic), 알파벳(Alphabet)의 구글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AI 발전 위해 사회의 허락 얻어야"

나델라는 AI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사회가 기술 발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이 AI가 사람들에게 선택권과 경제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나델라는 "이야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이제는 사람들이 주도권과 경제적 기회를 갖고 있다고 느끼도록 실제로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AI 산업이 "사회적 허락을 얻기 위한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AI 기업이 기술의 잠재적 위험을 강조하면서 막대한 자본과 전력, 컴퓨팅 자원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인 사회적 동의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값싼 모델과 사용자 선택권 확대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고객들의 AI 이용 비용을 낮추기 위한 저가형 모델들을 잇달아 공개했다.

AI 사용량이 늘면서 기업 고객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빠르게 증가하자, 성능과 가격이 서로 다른 여러 모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회사는 자율적으로 장시간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코파일럿 코워크(Copilot Cowork)'도 출시했다.

사용자는 코파일럿 코워크가 업무를 수행할 때 고성능 모델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AI 모델도 선택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수의 최첨단 모델에만 의존하지 않고, 업무의 난이도와 비용에 따라 다양한 AI 모델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중국 딥시크 모델 제공도 검토

마이크로소프트는 중국의 저비용 AI 개발사 딥시크(DeepSeek)의 모델을 자사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딥시크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높은 성능을 구현한 AI 모델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오픈AI와 앤스로픽은 딥시크가 자사 모델의 출력물을 이용해 성능을 모방하는 이른바 증류 방식을 사용했다고 비판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딥시크 모델을 코파일럿 플랫폼에서 제공할 경우 중국 AI 모델의 이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동시에 오픈AI와 앤스로픽은 마이크로소프트 플랫폼 안에서도 저가형 경쟁 모델과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할 가능성이 있다.

자체 최첨단 모델 경쟁에서는 뒤처져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며 생성형 AI 붐을 주도한 기업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개발한 최첨단 AI 모델 경쟁에서는 구글과 오픈AI, 앤스로픽 등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시장조사업체 리콘애널리틱스(Recon Analytics)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 구독자들은 구글 제미나이(Gemini) 등 다른 서비스를 이전보다 더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력 있는 자체 프런티어 모델을 확보하지 못한 마이크로소프트는 특정 모델을 중심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대신, 여러 모델을 교체 가능한 상품처럼 제공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AI 모델 간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다양한 AI 기업이 사용하는 기반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픈AI·앤스로픽과 협력은 계속

나델라의 발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와 앤스로픽과의 관계를 중단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의 초기 주요 파트너 가운데 하나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오픈AI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회사는 수년 동안 긴장관계를 겪었지만 최근 오픈AI가 다른 대형 기술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합의를 체결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앤스로픽과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나델라는 모든 기업이 함께 성장할 공간이 있으며, 앞으로도 성공적인 신생 AI 기업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대변인도 오픈AI와 앤스로픽과의 성공적인 협력관계를 계속 발전시킬 것이라며, 나델라가 제시한 AI 산업 재편이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제로섬 경쟁은 아니라고 밝혔다.

AI 일자리 감소론 비판

나델라는 AI를 비용 절감과 인력 감축 수단으로만 보는 기업 경영자들의 접근도 비판했다.

그는 일자리를 없애는 것보다 AI를 활용해 업무를 재편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델라는 "일자리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생각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사람과 AI를 함께 활용하기 위해 인간 자본과 함께 자체 AI 역량을 의미하는 '토큰 자본'을 보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I 도입 과정에서 업무의 변화와 일부 직무 이동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기업들이 인간과 AI를 결합해 새로운 업무체계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AI 기업들의 고용 충격 전망과 차이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최고경영자는 AI가 일자리 시장에 미칠 충격을 여러 차례 경고했다.

그는 지난해 새로운 AI 시스템이 2029년까지 초급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을 없앨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Sam Altman)도 상당한 일자리 감소를 예상했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전망이 틀린 데 대해 기쁘다고 말했다.

오픈AI는 AI가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혜택을 알리기 위한 정책 제안도 내놓았다.

오픈AI와 앤스로픽 경영진은 AI 안전 위험에 대해서도 반복적으로 경고해왔다.

앤스로픽은 강력한 신규 모델의 광범위한 공개가 가져올 위험 문제를 놓고 백악관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나델라는 이러한 위험 경고와 자원 확대 요구가 결합될 경우 대중에게 소수 기업의 권력 확대를 정당화하려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기업이 통제하는 AI 시스템 강조

나델라는 기업이 한 개의 외부 AI 모델에 모든 데이터와 지식을 의존하는 대신,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I를 기업이 근로자의 능력과 내부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돕는 지식 엔진으로 묘사했다.

기업들은 가격과 성능이 서로 다른 다양한 모델을 사용하고, 이들 모델을 자사가 통제하는 시스템 안에서 경쟁하고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나델라는 이러한 모델들이 "기업이 통제하는 기계 안에서 각자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하나의 최첨단 AI 모델이 기업의 업무와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구조보다 여러 모델을 목적에 따라 선택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기업 경쟁력은 축적된 지식에서 나와

나델라는 미래 기업의 경쟁력이 조직 안에 축적된 암묵적 지식에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지식에는 직원들이 보유한 경험과 판단뿐 아니라 AI 시스템이 처리하고 생성한 정보도 포함된다.

그는 미래 기업을 인간의 지혜와 AI 토큰이 함께 학습하는 '지속적인 학습 시스템'으로 설명했다.

기업이 자체 데이터와 업무 노하우,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내부 지식이 외부 AI 모델에 흡수되거나 경쟁사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가 차별성을 잃고 범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 산업 권력구조 재편 시도

나델라의 발언은 최첨단 모델의 성능 확대를 중심으로 진행된 AI 경쟁의 방향을 바꾸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을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 프런티어 모델 경쟁에서는 뒤처졌지만, 클라우드와 업무용 소프트웨어, 기업 고객 기반을 활용해 다양한 모델을 유통하고 운영하는 중심 플랫폼이 되려 하고 있다.

저가 모델을 확대하고 사용자가 모델을 선택하도록 하면 AI 개발사 간 가격 경쟁이 촉진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전략은 오픈AI와 앤스로픽 등 고성능 독점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의 수익성과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나델라는 AI의 혜택이 특정 모델 개발사에 집중되지 않고 기업과 근로자, 소비자에게 폭넓게 분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주장은 AI 기술의 발전 자체를 늦추자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제하고 그 경제적 가치를 나누는 방식이 보다 분산돼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