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사우디 원유 수송 봉쇄 선언...바브엘만데브 해협 긴장 고조에 유가·세계경제 압박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 해상 수송로를 위협하며 미·이란 전쟁의 새 전선을 열었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수송을 겨냥한 봉쇄를 선언하고 선박 2척에 공격을 가하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에 새로운 군사·경제적 부담을 안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홍해와 아덴만, 인도양을 잇는 핵심 해상 요충지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란이 전쟁 중 사실상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중동 에너지 수송의 또 다른 병목 지점이 위협받고 있다는 의미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주요 항로다. 이곳이 불안해지면 선박들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는 장거리 항로를 택해야 하고, 이는 운송 비용과 유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우디 원유 수송 겨냥한 봉쇄 선언
후티 반군은 최근 사우디 원유 수송을 겨냥한 홍해 봉쇄를 선언했다. 일부 사우디 원유 선박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장은 이미 강하게 반응했다.
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23일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두 달 만에 최고 수준으로 마감했다. 후티 반군의 위협이 실제 해상 교통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더라도, 해운사들이 위험을 우려해 항로를 피하면 사실상 봉쇄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사우디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마이클 래트니(Michael Ratney)는 "상업 교통을 멈추기 위해 실제 미사일이나 드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해운사들이 그곳을 지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봉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르무즈 이어 바브엘만데브까지 압박
이번 사태가 특히 심각한 것은 중동의 두 핵심 해상 병목 지점이 동시에 압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전쟁 과정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한 상태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핵심 통로다. 여기에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위협하면서, 에너지 수송망은 양쪽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게 됐다.
미군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홍해 전선까지 확대되면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적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구축함 USS 곤잘레스(USS Gonzalez)가 홍해에 배치돼 있지만, 미군이 후티 반군과 직접 교전하거나 사우디 선박 방어에 나설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란과의 전투에 투입된 미군 함정들은 아라비아해에도 배치돼 있으며, 필요할 경우 예멘을 향한 공격도 가능하다.
후티, 이란의 '비해군 해상 봉쇄 카드'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세력이다. 중동 전문가들은 후티 반군이 지금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배경으로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압박, 사우디와의 긴장 재점화, 예멘 내 항구 봉쇄 문제 등을 꼽고 있다.
예멘과 페르시아만 문제를 연구하는 뉴아메리카(New America)의 애덤 배런(Adam Baron)은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후티는 이란에 핵 옵션과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그는 후티 반군이 정규 해군력은 없지만 해상 봉쇄를 실행하고 세계경제를 인질로 잡을 수 있는 세력이라며, "그들은 과거에도 이를 해냈고 자신들이 가진 지렛대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후티 반군은 기술적으로는 미국 군사력에 크게 뒤처진다. 그러나 비대칭 전력으로는 상당한 위협이 된다. 이들은 공격용 드론,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무인 보트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까지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과 드론 능력도 갖췄다.
군사적 응징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후티
후티 반군은 과거에도 강력한 외부 군사 압박을 견뎌냈다.
미국은 지난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위협하던 후티 반군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습 작전을 벌였지만, 후티 반군의 해상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사우디가 주도한 연합군도 7년 동안 후티 반군을 예멘 수도 사나(San'a)와 북서부 지역에서 몰아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래트니 전 대사는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후티는 외국 군사개입으로 엄청난 폭력을 견뎌냈지만, 그들의 이념이나 동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과 사우디가 후티 반군을 다시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을 꺼리는 이유다. 후티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 상대이며, 제한적 공습만으로 해상 위협을 제거하기 어렵다는 경험이 이미 있다.
가자전쟁 때도 홍해 항로 위협
후티 반군은 이미 가자전쟁 당시 홍해 선박을 공격한 전력이 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군사작전을 벌이자,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하고 홍해 선박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많은 해운사들이 수에즈 운하 대신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로를 선택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사우디 유조선들은 이미 이번 주 더 긴 항로를 택하거나, 이집트를 가로지르는 송유관을 통해 지중해로 원유를 보내는 방안을 선택하고 있다.
사우디와 후티 휴전도 흔들려
이번 긴장은 사우디와 후티 반군 사이의 4년간 긴장 완화 흐름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티 반군은 이달 초 사우디가 예멘 수도 사나 국제공항 활주로를 폭격했다고 주장했다. 이 공항에는 이란 지도자 장례식에 참석했던 후티 대표단을 태운 항공기가 착륙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는 이후 후티 반군이 자국 남서부의 민간 공항을 향해 탄도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휴전 이후 사우디와 후티 반군 사이에서 발생한 첫 대규모 충돌로 평가된다.
최근 사우디와의 충돌, 그리고 이란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 확대가 맞물리면서 후티 반군은 본격적으로 전쟁에 개입할 명분과 기회를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런은 후티 반군이 "레드라인을 시험하고 새로운 선을 설정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이스라엘·파키스탄까지 끌려들 수 있어
후티 반군의 움직임은 전쟁을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시킬 위험도 있다.
후티 반군이 사우디 기반시설에 중대한 피해를 입히거나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할 경우, 사우디가 군사개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리야드가 어떤 상황을 확전의 기준으로 삼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또 다른 변수는 파키스탄이다. 사우디는 지난해 파키스탄과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미국 안보 보장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 상황에서 지역 내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파키스탄은 몇 달 전 전투기와 병력을 사우디에 배치했다. 파키스탄이 개입할 경우 전쟁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특히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이며, 동시에 이란과 미국 사이의 중재자 역할도 맡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스라엘 역시 후티 반군의 장거리 미사일과 드론 사정권에 들어간다. 후티 반군이 홍해 선박과 사우디 원유 수송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을 확대할 경우, 전쟁은 다층적 지역전으로 번질 수 있다.
후티 요구는 사우디 철수와 전후 재건 비용
후티 협상팀 구성원인 압둘말리크 알레지리(Abdulmalik Alejri)는 후티 반군이 사우디에 전쟁 재건 비용 지급과 예멘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멘은 현재 후티가 장악한 북부·서부 지역과 사우디가 지지하는 남부·동부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가 예멘 전쟁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요구는 단순한 해상 봉쇄를 넘어, 후티 반군이 이번 전쟁을 사우디와의 정치·군사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계경제에 또 다른 충격
후티 반군의 홍해 위협은 세계경제에도 직접적인 부담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이미 불안정한 가운데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위협받으면, 에너지 수송과 해상 물류 비용은 더 상승할 수 있다.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이 우회 항로를 선택하면 운송 기간은 길어지고 보험료와 연료비도 늘어난다.
이는 원유 가격뿐 아니라 소비재 가격, 물류비, 항공·해운 비용, 물가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시장이 이미 이러한 위험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티 변수, 미·이란 전쟁의 위험 키운다
후티 반군의 참전은 미·이란 전쟁을 더 복잡하고 위험하게 만드는 변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압박하는 동안 비교적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후티 반군은 이제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무대로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이는 이란이 직접 해군력으로 통제하지 않는 또 다른 해상 병목 지점을 대리세력을 통해 압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사우디는 후티와의 직접 충돌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선박 공격과 사우디 원유 수송 봉쇄가 계속될 경우 대응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후티 반군이 단순한 지역 무장세력이 아니라, 세계 에너지 수송망과 해상 교역을 흔들 수 있는 비대칭 전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동시에 위협받는다면, 중동 전쟁은 군사 충돌을 넘어 세계경제 전체를 흔드는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