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비상명령에 따라 텍사스 기반 석유회사 세이블 오프쇼어(Sable Offshore Corp.)의 캘리포니아 산타바버라 카운티 해안 송유관 가동을 계속 허용하고, 해당 사업에 대한 규제 권한 상당 부분을 연방정부로 이관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LA타임스는 20일(목) 보도했다.

스티븐 V. 윌슨(Stephen V. Wilson) 미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19일 캘리포니아주 중부지구 연방지방법원에 접수된 45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이는 몇 달째 파이프라인 안전성을 이유로 세이블의 해상 석유 사업에 맞서 온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환경단체들에게 타격이 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캘리포니아의 해안 보호 권한을 흔들 수 있는 조치들을 계속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나온 판결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다만 윌슨 판사는 세이블에 대해서도 강한 질책을 내놓았다. 재가동과 관련한 구체적 규정을 담은 연방 동의명령(consent decree)을 세이블이 지키지 않았다며, 휴스턴에 본사를 둔 이 회사에 캘리포니아주에 약 15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 국방물자생산법 앞세운 연방정부 개입, 첫 심층 사법심사

이번 판결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 해상 석유사업에 개입한 것에 대한 지금까지 가장 심층적인 사법심사로 평가된다고 LA타임스는 짚었다. 특히 미 에너지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발동해 세이블에 원유 펌핑 재개를 명령한 조치가 핵심 쟁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에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온 세이블 경영진은 이 명령을 근거로 수십 년 된 석유 사업을 되살렸다. 해당 사업은 2015년 리퓨지오 주립해변 인근에서 송유관이 파열돼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 중 하나를 일으킨 뒤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그 이전에도 세이블은 캘리포니아 규제당국과 수개월간 충돌하며 시추 재개가 지연된 바 있다.

윌슨 판사는 판결문에서 "국방물자생산법 명령은 법적으로 세이블의 육상 파이프라인 운영 능력과 충돌하는 모든 주법(州法)의 집행을 우선적으로 배제한다"고 밝혔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항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에너지 프로젝트에 개입하거나 다른 주의 법·규제를 무력화하려 할 때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법을 전공한 UCLA 로스쿨의 앨런 마크스(Allan Marks) 교수는 "이는 캘리포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연방 에너지부나 내무부가 국방물자생산법을 핑계 삼아 주(州) 환경법을 짓밟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규제 권한은 연방으로, 기준은 주(州) 유지

윌슨 판사는 새로운 감독 체계에서도 파이프라인에 대한 주정부의 모든 요건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주체는 캘리포니아 주 기관이 아니라 연방 파이프라인·위험물질안전청(PHMSA)이 될 것이라고 명확히 했다. 판결문은 이 새로운 체계를 "에너지 안보와 캘리포니아 해안 생태계 보호 사이의 균형"이라고 규정했다.

캘리포니아주가 파이프라인에 대한 직접 감독권을 잃게 됐지만, 세이블은 여전히 반기별로 주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판결문은 "캘리포니아가 위반 사항을 확인할 경우, 이 법원에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번 판결은 세이블 관련 조치의 적법성과 결과를 다투는 4건의 병합 소송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오랜 기간 유지돼 온 동의명령의 집행을 요구한 캘리포니아 측 청구와, 그 조건을 종료해달라는 연방정부 측 청구였다고 판결문은 설명했다.

◇ 환경단체 "연방정부가 주 권한 찬탈" 반발

산타바버라에 기반한 환경보호센터(Environmental Defense Center)의 린다 크롭(Linda Krop) 수석법률고문은 이번 판결의 상당 부분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번 판결이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한을 찬탈하도록 허용한다"고 비판했다.

세이블 사업에 반대하는 투쟁을 이끌어 온 크롭 고문은 윌슨 판사가 연방정부의 조치와 국방물자생산법 적용에 대해 "폭넓은 해석"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돌리 M. 지(Dolly M. Gee) 연방판사가 세이블 관련 다른 소송에서 이 법을 더 좁게 해석한 판결을 내린 점을 언급하며, 항소법원도 그와 같은 좁은 해석을 채택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크롭 고문은 윌슨 판사가 "세이블이 법원 명령을 위반해서는 안 됐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세이블이 일방적으로 규정을 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반복된 행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세이블, 벌금·소송 이어져도 매출은 늘어

세이블은 지난해 파이프라인 수리 작업을 시작하기 전 캘리포니아 해안위원회로부터 필요한 허가를 받지 않은 것과 관련해 1800만 달러 이상의 벌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이 회사는 또 주 환경법 위반 혐의로 형사기소된 상태이며, 회사 관행에 대한 의회 조사와 내부자거래 의혹 관련 소송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세이블은 올해 2분기 회사의 가장 최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자료 기준 1억37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7월 하루 평균 약 3만8000배럴의 원유를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이블은 연방 해역 내 해상 플랫폼 3기와 육상 처리시설, 원유를 육지로 운반해 판매하는 파이프라인을 포함한 산타이네즈 유닛(Santa Ynez Unit) 전체를 소유·운영하고 있다.

미 연방 9순회항소법원에 세이블의 해상 사업과 관련해 이미 최소 2건의 소송을 제기한 롭 본타(Rob Bonta)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 측 대변인은 이번 판결의 세부 내용이나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

다만 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의 환경과 공중보건을 희생시키면서 세이블이 이익을 취하도록 계속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이어 "캘리포니아는 주(州)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려는 시도에 계속 맞서 싸울 것이며, 모든 법적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