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융합 스타트업 리얼타퓨전(Realta Fusion)이 위스콘신 지역 전력회사 매디슨 가스 앤드 일렉트릭(Madison Gas and Electric)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IT전문매체인 테크크런치는 3일(목) 보도했다. 이번 계약으로 미국 내 최초 계열 격인 그리드 연계형(grid-connected) 핵융합 발전소가 위스콘신주에 들어설 전망이다.
보도에 따르면 리얼타퓨전과 매디슨 가스 앤드 일렉트릭은 2030년대 중반쯤 200메가와트(MW) 규모 발전소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소도시 하나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의 용량이다. 매디슨 가스 앤드 일렉트릭은 이번 계약의 일환으로 리얼타퓨전에 지분 투자도 단행했으나,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리얼타퓨전은 매디슨 소재의 옛 오스카 마이어(Oscar Mayer) 공장을 연구개발(R&D) 시설로 개조하고 있다.
이번 협력을 통해 리얼타퓨전은 자금 지원 외에도 그리드 연계 부지를 확보하게 됐다. 전력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가 점점 더 촘촘해지는 전력망에 접속할 부지를 찾아 나서는 상황에서 이는 핵심적인 이점으로 꼽힌다. 매디슨 가스 앤드 일렉트릭은 또한 향후 발전소 건설을 위한 엔지니어링·기술 지원과 자금 조달도 지원할 예정이다.
테크크런치는 이러한 전력회사와 핵융합 스타트업 간 제휴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핵융합 기술의 진전뿐 아니라 미래 전력 공급에 대한 전력회사들의 불안감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짚었다. 현재까지 전력회사와 계약을 맺은 핵융합 스타트업은 손에 꼽을 정도인 만큼, 이번 계약도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창업자와 투자자들 입장에서 이런 제휴는 일종의 '현실 신뢰도 검증'으로 통한다. 전력회사와의 계약은 핵융합 스타트업에 엔지니어링 지원과 인허가 지원, 그리드 연계를 위한 부지 선정, 토지 임대 등 여러 이점을 제공한다. 반대로 전력회사 입장에서는 향후 수십 년간 전력망을 바꿔놓을 잠재력을 가진 기술에 조기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전력회사들은 원래 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핵융합 발전은 수십 년간 '곧 실현될 기술'로 여겨졌지만, 그만큼 오랫동안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핵융합 스타트업들이 과학적·공학적 난제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고, 여기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급증까지 맞물리면서 전력회사들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었다는 게 테크크런치의 분석이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 확대로 어려움을 겪어온 전력회사들에 핵융합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여겨진다. 풍력과 태양광은 저렴하고 친환경적이지만 바람이 불거나 해가 떠 있을 때만 전력을 생산한다는 한계가 있다. 배터리가 재생에너지의 간헐적 전력 공급을 안정화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떠오르긴 했으나, 전력회사들은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이른바 '기저부하(baseload)' 발전원, 그것도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대안을 계속 찾아왔다. 24시간 가동을 목표로 설계되는 핵융합 발전소는 내부 작동 원리는 공상과학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그리드 운영자 입장에서는 익숙하면서도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핵융합 스타트업과 전력회사 간 계약 사례 중 가장 진척이 빠른 곳은 커먼웰스퓨전시스템스(Commonwealth Fusion Systems, CFS)다. CFS는 도미니언 에너지(Dominion Energy)와 협력을 시작한 지 곧 2년이 되며, 첫 상업용 발전소 '아크(Arc)' 건설을 위해 도미니언으로부터 부지를 임대하기로 합의했다. 아크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인근에서 전력망에 연결될 예정이며, 400메가와트 규모 전력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과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에니(Eni)는 이미 이 발전소에서 생산될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며, 아크는 2030년대 초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반대편에서는 헬리온(Helion)이 워싱턴주 첼란 카운티 공공전력공사(Chelan County Public Utility District)와 협력해 첫 발전소 '폴라리스(Polaris)'를 짓고 있다. 헬리온은 해당 전력공사로부터 부지를 임대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에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2028년 50메가와트 규모 시설을 가동할 계획이다.
테네시주에서는 타입원에너지(Type One Energy)가 테네시밸리청(Tennessee Valley Authority)과 맺은 대규모 계약의 일환으로, 오크리지 인근 옛 석탄화력발전소 부지에 350메가와트급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 스타트업은 '인피니티투(Infinity Two)' 발전소를 통해 2030년대 중반쯤 전력망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 남부에서 프록시마퓨전(Proxima Fusion)이 옛 발전소 부지 재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이 회사는 독일이 원자력 기술 폐기를 결정한 이후 유럽 최대 전력회사 중 하나이자 과거 독일 원전을 대거 운영했던 RWE가 폐쇄 절차를 밟고 있는 옛 원자력 발전소 부지에 첫 상업용 발전소 '스텔라리스(Stellaris)'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RWE는 프록시마퓨전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프록시마퓨전은 2030년대 후반 스텔라리스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테크크런치는 현재로서는 이런 계약의 혜택이 전력회사보다 스타트업 쪽에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짚었다. 스타트업들은 그렇지 않았다면 비용이 많이 들거나 접근 자체가 어려웠을 전문 지식과 부동산을 확보하게 되며, 이는 자본 집약적이기로 악명 높은 핵융합 사업의 위험을 자본 효율적으로 낮추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전력회사 입장에서는 잠재적 보상이 다소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새로운 전력 공급원 확보라는 측면에서 성과는 상당할 수 있다고 테크크런치는 전망했다. 전력회사들은 원래 장기 프로젝트에 익숙하지만 핵융합처럼 큰 위험을 감수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전력이 부족한 전력망을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도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를 짓는 데 10년이 걸릴 수 있지만, 전력회사 입장에서 그 정도 시간은 사실상 '내일'이나 다름없다는 게 이번 보도의 결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