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경제상황에 인민은행 잇달아 유동성 확대... 기대 못 미쳐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 속 부동산·금융업계의 연쇄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 수출 둔화와 미국의 압박 강화 등으로 전방위적 위기에 처하자 유동성 확대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21일(현지시간)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연 3.45%로 0.1%포인트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영향을 주는 5년 만기 LPR은 연 4.2%로 종전 금리를 유지했다.
이는 1년 만기, 5년 만기 LPR 모두 0.15%포인트 인하를 예상한 시장 전망치에 미치지 못해 유동성 공급 규모, 위안화 환율 방어 등과 관련한 당국의 고민을 반영했다.
미국이 금리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 중국이 금리를 대폭 인하할 경우 해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 오히려 환율이 상승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인민은행이 "5년 만기 LPR은 동결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부동산 부양은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 인민은행은 7일물 역레포(역환매조건부채권) 금리를 1.8%로, 1년 만기 중기 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2.5%로 각각 0.1%포인트와 0.15%포인트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시장에 총 6천50억 위안(약 111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인민은행은 이어 16일에는 7일물 역레포 계약을 통해 2천970억 위안(약 55조원)의 현금을 시장에 투입했다.
또 지난 18일 거래 수수료 인하 등 증시 지원책을 발표했으며, 금융기관들에 경제 회복을 위해 대출을 확대하라고 주문하는 등 갖가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인민은행은 20일 금융감독관리총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와 지난 18일 화상회의를 열어 실물경제 발전과 금융위기 예방 방안 등을 논의했다며 "주요 금융기관들은 책임을 지고 대출을 늘려야 하며 대형 국유은행은 계속 기둥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금리 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지금의 중국 경제를 치료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지도부가 '제로 코로나' 해제 이후 더딘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부양책을 자제해온 상황에서 현재 문제의 핵심인 부동산 시장 부양과 소비자에 대한 현금성 지원 등 더 강력한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문가를 인용해 보도했다.
당국은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이 부진해지자 내수 진작을 위해 온갖 '당근'을 꺼내 들었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경제 위기감 속 지갑을 잘 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심화하고 그 여파가 금융업계까지 번지면서 소비 심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2021년 말 디폴트를 선언한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법 15조(챕터 15)에 따른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도 지난 7일 만기가 돌아온 액면가 10억 달러 채권 2종의 이자 2천250만 달러(약 300억원)를 지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상반기에 최대 76억 달러(약 10조1천억원)의 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금융권으로 전이되면서 '그림자 금융'의 위기가 드러나고 있다.
그림자 금융은 은행처럼 신용을 창출하면서도 은행과 같은 규제는 받지 않는 금융기업이나 금융상품을 일컫는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 규모는 총 3조 달러(약 4천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자산 관리회사 중즈(中植)그룹이 이제는 중국의 취약한 금융의 상징이 됐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짚었다.
관리 자산 규모가 1조 위안(약 182조원) 이상인 중즈그룹과 함께 계열 신탁회사들은 고객 수천 명에 대한 현금 지급을 중단한 후 집중적인 조사를 받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그림자 금융 산업을 흔드는 유동성 위기가 더 넓은 금융 분야의 위기를 촉발하고 이미 약화한 중국 경제에 도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