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순교자 아이콘' 오르며 지지층 결집·대선 가도 파란불
바이든, 총격 규탄·트럼프 통화 등 일정 소화...WP "향후 계산 복잡해질 듯"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13일(일) 피격 사건으로 미 대선판이 다시 한번 뒤집히고 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공식 지명이 이뤄지는 공화당 전당대회를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번 사건의 충격파로 인해 그간의 대선 레이스 흐름은 급변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선판을 삼켰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TV토론 참사 후폭풍을 이제는 '트럼프 유세장 피격' 사건이 다시금 빨아들이면서 미 대선 레이스가 혼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WP는 이번 피격 사건이 "이미 어둡고 소란스러운 대선을 뒤집어놓았다"고 짚었다.

현장에서 사살된 암살 시도 용의자의 범행 의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 논란 및 후보 사퇴론으로 인해 2주 넘도록 대혼돈을 겪었던 대선판을 재차 뒤흔들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대인 조 바이든 대통령을 박빙으로 앞서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칫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던 끔찍한 테러에서 생존한 데다 폭력에 굴하지 않는 이미지를 보태면서 정권 탈환에 일단 파란불이 켜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피격 당한 후 주먹을 들어보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 연합뉴스)

종종 순교자나 희생자 역할을 할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통해 자연스레 그런 역할을 맡게 됐다는 게 WP의 분석이다.

특히 총격 이후 무대에서 빠져나갈 때 서둘러 피하자는 백악관 비밀경호국 요원들의 재촉에도 불끈 쥔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면서 "싸워라"라며 '저항하는 투사'의 모습을 연출한 것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변되는 지지층 결집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주먹을 든 그의 사진은 이미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있으며 몇몇 공화당 의원들은 아무런 언급 없이 해당 사진들만 게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앞에는 13일 밤 빨간색 트럼프 모자에 성조기를 든 지지자들이 모여들었다. 지지자 일부는 "밤새도록 여기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 역사학 전문가인 더글러스 브링클리 라이스대 교수는 "미국인의 정신에는 압박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용기를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으며, 트럼프가 주먹을 높이 든 장면은 새로운 상징이 될 것"이라며 "암살에서 살아남으면 대중의 동정 여론이 커지기 때문에 순교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피격 사건 직후 총격을 규탄하는 성명과 대국민 연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등의 일정을 소화했지만, 당분간 조심스럽게 '로키 모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건의 큰 충격파가 모든 뉴스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그간 시달려 온 민주당 내부의 거센 후보 사퇴론을 잦아들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바이든과 그의 캠프의 향후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WP는 지적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에서 더욱 힘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대선 필승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빙 추격전을 벌이던 여론조사에서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갈수록 더 희박해진다면 민주당 내부와 고액 기부자들 사이에서 대선 후보 교체론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화력을 집중해 온 바이든 캠프는 피격 사건 직후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발송을 일시 중단하고 TV 광고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공화당 진영 쪽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암살 시도에 연루돼 있다는 음모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악재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일 기부자들을 상대로 "이제 토론에 대한 이야기는 끝났으니 이제는 트럼프를 과녁 한복판에 넣어야 할 때"라고 말했는데, 공화당에서는 이를 두고 '암살 지시'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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