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제염 기업인 '태평염전'으로부터의 천일염 수입을 전면 차단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4월 3일(목), 태평염전의 천일염 제품에 대해 '인도보류명령(Withhold Release Order, WRO)'을 발령하고, 미국 전역의 모든 항구에서 이 제품들의 통관을 금지했다. 이는 태평염전이 국제노동기구(ILO)가 규정한 강제노동의 주요 지표들을 충족한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CBP는 발표문을 통해 "태평염전은 노동자의 이동 제한, 신분증 압수, 임금 미지급, 과도한 초과근무, 협박, 채무노동, 신체적 폭력 등 강제노동의 핵심 지표들을 충족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제품의 미국 내 유통을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CBP의 WRO 명단에 오르는 사례로, 지금까지는 중국, 짐바브웨,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주를 이루었다.
■ 문제의 발단은 '섬노예' 사건 재점화
태평염전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한국 최대 규모의 염전으로, 140만 평에 달하는 부지를 다수의 천일염 생산자에게 임차 운영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구조 안에서 2021년, 2014년의 '신안 염전 노예 사건'과 유사한 강제노동 사건이 재발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해당 사건에서는 일부 수탁운영자가 근로자의 임금을 장기간 갈취하고, 명의를 도용해 대출을 받는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드러났지만, 태평염전 측은 인력 고용이 수탁자의 권한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해 비판을 받아왔다.
■ 공익단체의 청원, 미국 정부 조치 이끌어
이번 WRO 조치는 2022년 11월, 공익법센터 어필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원곡법률사무소가 공동으로 태평염전 등 한국 천일염 산업의 강제노동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 내 유통 중단을 청원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들 단체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수년간 염전 강제노동 문제를 방치해 왔다"며, 피해자 지원, 인신매매 처벌 조항 신설, 기업 인권실사 의무화 등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반박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4월 7일, "현재 미국으로 수출되는 태평염전 천일염 제품은 강제노동과 무관하다"고 반박하며, "2021년 사건 이후 매년 염전 인력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자동화 장비 보급을 확대하는 등 개선 조치를 취해왔다"고 밝혔다. 신안군 역시, 2021년 12월 제정된 '신안군 인권보장 및 증진 조례'를 근거로, "현재까지 인권 침해나 임금 체불 사례는 단 한 건도 보고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 수출 의존도 높은 미국 시장, 신안 염전 업계 '비상'
이번 조치는 태평염전이 2025년 첫 제염식을 연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내려진 것으로, 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미국은 신안 천일염의 최대 수출국으로, 이번 수입금지 조치는 염전업계에 전례 없는 경제적 타격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부는 2022년부터 이미 신안 지역의 인신매매 실태에 주목해 왔으며, 강제노동 문제가 개선되지 않자 이번과 같은 강경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