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헬기, 60m 고도 제한 어기고 지정 항로 800m 이탈 끝 충돌
헬기 조종사는 1천시간 이상 베테랑...야간투시경 착용 여부 조사
관제사 1명 '재량 조퇴'...하루 전에도 여객기-헬기 사고 발생할 뻔
29일(수)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발생한 여객기와 헬기의 충돌·추락 사고의 원인을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민항기와 군용 헬기의 공중 충돌이라는 흔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를 두고 외신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이 거론된다.
먼저 여객기와 충돌한 미 육군 블랙호크(시코르스키 H-60) 헬기가 '비정상적 비행'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관계자 4명을 인용, 사고 당시 헬기가 허가받은 경로와 고도를 벗어나 있었다고 30일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이 헬기가 상용 공역 진입 허가를 요청하자 로널드 레이건 공항 관제탑은 고도 200피트(약 60m) 이하로 포토맥강 동쪽 제방에 바짝 붙어 지나가는 항로 사용을 허가했다.
이 항로를 사전에 알고 있던 헬기 조종사가 아메리칸항공 여객기를 육안으로 확인하기까지 해, 관제탑에서는 여객기의 후방에서 항로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헬기는 300피트를 초과해 고도를 높였고, 허가된 항로에서 0.5마일(약 800m) 벗어나 여객기와 충돌했다.
헬기가 이렇게 항로를 벗어난 이유는 앞으로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CNN 방송은 미 육군 항공당국이 당시 헬기 조종사의 야간투시경 착용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야간투시경은 어두운 밤에 조종사가 수면과 하늘을 착각하는 '비행착각' 등 현상을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미 육군은 야간비행 시 투시경 착용을 의무화하지는 않고 있다.
사고 헬기의 조종사는 총 비행 경력 1천시간이 넘는 베테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비행 당시 야간투시경을 착용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반대로 혼잡하기로 유명한 이 지역의 '항공 교통안전'을 책임질 관제 인력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NYT은 미 연방항공청(FAA) 내부 예비 보고서를 근거로 사고 당시 로널드 레이건 공항의 관제 업무가 한 명에게 몰린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 공항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두 명의 관제사가 각각 헬기 관제와 고정익 항공기 관제를 나눠 맡는다고 한다. 오후 9시 30분을 넘겨 비행기 통행량이 줄어들면 1명의 관제사가 전체를 통제한다.
이날 사고는 오후 8시 53분께 발생했다. 아직 두 명의 관제사가 근무하고 있어야 하는 시각인데 일찍 한 명에게 업무가 인계된 셈이다.
관제탑 관리자는 그날의 항공 상황 등에 따라 때로 오후 9시 30분 이전에 한 명의 관제사를 재량껏 먼저 퇴근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FAA도 예비 보고서에서 이날의 관제사 배치에 대해 "시점이나 항공 통행량 등으로 미뤄 정상적이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고 하루 전인 28일에도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 민항기와 군 헬기가 충돌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코네티컷주 윈저록스에서 출발한 리퍼블릭항공 여객기가 착륙 직전 헬기를 발견하고 급히 기수를 돌려 약 10분간 선회한 뒤 다시 착륙했다는 것이다.
WSJ이 확인한 교신 기록에는 복행의 이유를 묻는 관제탑에 조종사가 "아래에 헬기가 지나고 있다"고 답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