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등 해외 투자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수십만 채 빈집 증가에 기여 

최근 산불로 황폐해진 지역에서 약 16km 떨어진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교외 지역. 정교하게 다듬어진 잔디 위에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호화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하지만 이 중 일부는 텅 빈 채로 남아 있으며, 그 주인들은 중국 등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오랫동안 부유한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내 고급 주택을 해외 자산으로 확보해 왔다. 그중에서도 중국인 구매자들의 비중이 컸다. 이들은 특히 로스앤젤레스로 몰려들었지만, 2018년 중국 정부가 외환 통제를 강화하면서 구매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San Marino

( 캘리포니아 샌 마리노 크리스티 인터내셔널 부동산 )

이제, 팔리세이즈와 이튼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집을 잃은 수천 명의 이재민이 새로운 거처를 찾고 있는 가운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 빈집 문제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왜 이 지역에 빈집이 이렇게 많은 걸까요?"라고 부동산 중개업체 컴퍼스(Compass)의 패서디나 지점 소속 애슐리 레이더가 질문했다.

산불로 집을 잃은 10여 명의 고객을 위해 새 주택을 찾고 있던 레이더는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집이 투자나 자산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주거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투자자가 보유한 빈집, 불안 키워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 빈집 중 상당수는 미국 내 거주자가 소유하고 있다. 일부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주택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지 못한 경우이며, 또 다른 일부는 미국 내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별장으로 활용하려는 이유로 시장에 내놓지 않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중국인 투자자들은 로스앤젤레스, 특히 샌 가브리엘 밸리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 지역은 웅장한 저택과 활발한 중국계 이민자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 중국인 구매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전체 주택의 약 6.1%인 22만5,000채가 공실 상태였다. 이 중 3만3,000여 채는 '계절적, 여가적 또는 가끔 사용' 목적으로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볼 때,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공실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UCLA 루이스 센터 주택정책연구소의 셰인 필립스 연구원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공실률은 미국 내 대부분의 카운티와 대도시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산불 이재민들 "빈집 활용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가족들에게는 빈집이 '활용되지 않는 피난처'처럼 보인다.

이튼 화재로 캘리포니아 알타데나에 있던 집을 잃은 조안 응우옌(39)과 그의 남편, 두 자녀는 장기 임대 주택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까지 세 곳의 집주인에게 거절당했으며, 한 곳에서는 월세 1만6,500달러 외에도 '뒷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응우옌 가족은 호텔과 시어머니 댁을 전전하다가, 현재는 로드아일랜드로 이주한 친구의 빈집을 임시로 빌려 거주 중이다. 그녀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빈집 소유자들이 더 많은 가족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건 좋은 기회입니다. 빈집을 활용해 호텔에서 떠도는 가족들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해야 해요."

공실 주택 규제 강화 움직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당국은 공실 주택이 관리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를 우려하며, 수년간 공실 주택을 규제하고 집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2022년, 샌 마리노 시의회는 공실 상업 및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 연간 1만 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주민투표안을 제안했으나, 결국 부결됐다. 현재 샌 마리노, 아카디아, 템플 시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주택 소유자가 공실 상태의 집을 등록하고, 등록 수수료를 납부하며, 지역 내 비상 연락 담당자를 지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부동산협회(CAR)의 오스카 웨이 부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샌 마리노, 아카디아, 패서디나 등 샌 가브리엘 밸리 지역이 오랫동안 해외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어왔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멕시코, 한국 등지에서도 해외 구매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해외 투자자는 1년에 몇 주 정도 휴가차 방문하거나, 자녀가 미국 대학에 다니는 동안 거주하는 목적으로 주택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임대를 놓기도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주택이 장기간 비어 있는 상태로 유지된다.

해외 투자 감소... 빈집 문제 해결될까?

최근 몇 년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해외 투자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캘리포니아 부동산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 전체 주택 거래 중 해외 구매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6%로, 2008년의 10.6%에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 같은 감소세는 미국 내 집값이 급등한 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해외 자금 이동을 제한한 영향이 크다.

웨이는 로스앤젤레스 지역 단독주택 약 15만 채가 해외 투자자의 소유이며, 이 중 약 2만7,000채는 거주용이 아닌 투자용이라고 추정했다.

샌 마리노 시의원 캘빈 로는 산불 피해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공실 주택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중개인 재니스 리는 지난 40년간 샌 마리노에서 부동산을 거래하며 해외 투자자들에게 주택을 매각한 비율이 전체 거래의 10%에 달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해외 구매자들은 종종 자신이 직접 거주할 계획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우리 지역에 또 하나의 빈집이 생기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