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에 거주하던 전직 웨이트리스 크리스티나 채프먼은 바쁜 일상을 SNS에 공유하며 '헬시 헛슬(열심히 사는)' 문화의 전형으로 보였다. 틱톡 팔로워 10만 명을 넘긴 그녀는 컴퓨터 관련 고객과의 재택 근무, 자신이 쓰기 시작한 판타지 소설, 진보 성향 정치 이슈, 식사, 좋아하는 일본 아이돌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다.

그러나 연방 검찰에 따르면, 실제로 그녀는 '노트북 농장(laptop farm)'을 운영하며 북한 국적자들이 미국 IT 기업에 위장 취업하여 급여를 챙기도록 돕는 역할을 맡았다. 이를 통해 300개 이상의 미국 기업에서 총 1,710만 달러(약 230억 원)에 달하는 불법 급여가 북한에 유입되었다.

2023년 6월, 그녀는 "오늘 아침은 너무 바빠서 아침도 못 만들었어요. 고객들이 미쳐가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아사이볼과 피냐콜라다 스무디를 사 먹었다고 밝혔다. 그 뒤편에는 팬이 돌아가는 노트북 수십 대가 선반에 놓여 있었고, 더 많은 기기들이 옆에 쌓여 있었다.

채프먼과 같은 인물은 미국 전역에 수십 명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북한의 '노트북 농장' 계획에 가담해 자국의 IT 인재들이 미국 원격 근무자로 위장 취업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은 미국인의 신원을 도용해 고용되며, 채프먼과 같은 조력자는 기기를 수령하고 원격 접속 프로그램을 설치해 북한 측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채프먼은 링크드인에서 '해외 IT 인력을 미국 기업에 연결해주는 회사의 미국 대리인 역할'을 제안받았고, 법원 문서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이 북한과 연계되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FBI는 이 사기가 수천 명의 북한 인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북한 경제에 연간 수억 달러의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고 밝혔다. FBI 사이버부서의 그레고리 오스틴 국장은 "이는 북한 경제의 실질적인 비율을 차지한다"고 경고했다.

국제 제재로 인해 자금줄이 막힌 북한은 해킹과 사기로 자금을 확보해왔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북한은 지금까지 60억 달러 이상의 암호화폐를 탈취했다. '노트북 농장'은 이른바 긱 경제(gig economy)를 역이용한 사기 방식으로, 기업을 속여 급여를 갈취한다.

보안회사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애덤 마이어스 부사장은 "이제 원격근무자를 활용하는 기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자사 고객 네트워크에서 150건 이상의 북한 인력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북한 IT 인력은 자국 내 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일부는 자국에 머물고, 일부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으로 이동해 북한 출신이라는 흔적을 숨긴 채 안정적인 인터넷 접속 환경에서 미국 기업에 취업한다. 이들은 실제 연봉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고소득 IT 직무를 수개월에서 수년간 유지하기도 한다.

이들 중 일부는 매우 낮은 성과를 내며 해고되지만, 다른 이들은 장기간 근무하며 기업의 중요 자료를 유출하거나 스파이 활동, 랜섬웨어 목적의 데이터를 훔치기도 한다.

2023년, FBI가 미국 동부의 한 노트북 농장을 급습한 뒤 반환된 노트북을 살펴본 사이버보안업체 시그니아의 라이언 골드버그는, 해당 기기에 설치된 7개의 사용자 정의 프로그램이 기업 방화벽을 우회하고 줌 회의를 감시하며 민감한 데이터를 탐지 없이 다운로드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들은 창의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사기의 첫 단계는 '미국인 모집'이다. 북한 측은 링크드인, 업워크, 파이버 등 구직 플랫폼을 통해 수천 건의 메시지를 무작위로 보내며,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포섭한다. 채프먼 역시 2020년 3월 링크드인 메시지를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녀는 당시 미네소타 북부의 한 소도시에서 웨이트리스 및 마사지사로 일한 이력이 있으며, 웹 개발자가 되기 위해 코딩 부트캠프를 수료했지만 취업이 어려웠다. 2021년 1월 틱톡에선 "여행용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다. 물도, 화장실도, 난방도 없다"며 눈물로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2020년 10월경부터 북한 측과 협력하기 시작했고, 점차 규모를 확장했다. 2023년 1월까지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방 4개짜리 주택으로 이사했으며, 치와와 세 마리(헨리, 세레니티, 베리토)와 함께 살았다.

그녀는 고객들을 위해 위조된 W-2 양식과 신분증 사본을 보내고, 채용 후 발송되는 노트북을 받아 원격 접속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주는 등 전방위적 역할을 수행했다. 노트북에는 회사명과 사용자명을 적은 메모가 부착되어 있었다.

한 사례로, 2022년 4월 '맥스'라는 닉네임을 쓰던 노동자는 I-9 서류를 요구했고, 채프먼은 "당신 서명을 최대한 비슷하게 복사했다"고 답했다. 그는 "하하 고마워요"라며 응답했다.

그녀는 49대의 노트북과 태블릿 등을 중국 단둥 등지로 배송하기도 했고, 우편으로 도착한 급여를 수령해 예치한 뒤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다른 계좌로 송금했다.

북한은 이 같은 조력자 외에도 AI와 프리랜서 플랫폼을 악용해 기업의 인증 절차를 우회해왔다. 이들은 미국인에게 우편 수령 주소만 빌리거나, 신분증을 넘기도록 유도하고, 화상 면접 시 얼굴을 대체하는 AI를 사용하기도 했다. 화상 면접 중 손을 얼굴 앞에 흔들어 AI를 검출하는 방법이 등장하자, 이들은 진짜 사람을 고용해 인터뷰를 통과하게 했다.

이 사기는 신원 도용 피해자에게 세금 폭탄을 안기기도 한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에 따르면, 북한은 최소 세금 공제를 적용해 실제 피해자가 고액 세금을 떠안게 만든다. 검찰은 채프먼의 노트북 농장이 35명 이상의 미국인에게 허위 세금 부과를 유발했다고 밝혔다.

북한 인력이 잠입한 기업은 방송사, 실리콘밸리 기술기업, 방산업체, 자동차 제조사, 명품 유통체인, 미디어 대기업 등 미국을 대표하는 업종이었다. 채프먼은 "마커스"라는 인물의 IT 직무를 지원했으며, 그는 6개월 후 나이지리아에 데이터를 전송한 것이 적발되었다.

2023년 10월 27일, FBI는 채프먼의 노트북 농장을 급습해 90대 이상의 컴퓨터를 압수했고, 그녀의 '비밀 부업'은 막을 내렸다.

그녀는 12월부터 심각한 경제난에 빠졌다. 틱톡 팔로워들에게는 "10월 말에 일을 잃었고 마지막 급여도 못 받았다. 하루에 3~4개씩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 취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아마존에 색칠책을 올리고, 에츠에 가게를 열며, 렌트비 마련을 위한 고펀드미 캠페인도 시작했으나, 2024년 8월 결국 피닉스의 노숙자 보호소로 거처를 옮겼다. 10월 마지막 틱톡에서는 "다시 돌아올게요. 정말 정신없는 롤러코스터였어요"라고 남겼으며, 현재도 보호소에 거주 중이라고 변호인은 전했다.

2025년 2월, 그녀는 전신사기, 신원도용, 자금세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으며, 총 수익은 약 17만7천 달러였다. 그녀는 최대 9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7월 16일 최종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