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서 시작된 공개 설전, 정부 계약·우주 장비까지 위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간의 관계가 6월 5일(목) 하루 만에 급격히 파열됐다. 오랜 동맹 관계를 유지해온 두 사람은 이날 공개 석상과 SNS를 통해 서로를 비난하며 정면으로 충돌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와의 오벌오피스 회담 중 머스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나는 일론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는 잘 모르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머스크는 즉각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일론 머스크

(당선인시절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 자료화면 )

머스크는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을 통해 트럼프가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 관련 문서에 이름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며, 트럼프 탄핵을 주장하는 글까지 리트윗했다. 그는 또 정부가 의존하고 있는 스페이스X의 우주 장비를 비활성화하겠다는 위협도 가했다.

"정부 계약 끊겠다"는 트럼프... "정신 나갔다"는 머스크

트럼프 대통령 역시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그는 SNS를 통해 "연방 예산을 절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머스크의 기업들과 맺은 정부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라며 머스크를 겨냥했다. 이어 "일론은 '트럼프 망상 증후군'에 걸렸다"고 비난했다.

머스크는 이에 대해 "트럼프가 내가 없었다면 대선에서 졌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정당 창당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트럼프는 앞으로 3.5년 남았지만 나는 앞으로 40년 더 활동할 것이다"라는 그의 글은 파장을 키웠다.

두 사람의 공개 갈등은 머스크가 최근 트럼프의 입법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해당 법안은 전기차 및 태양광 관련 보조금 축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머스크는 이를 '기형적인 예산안'이라 비판한 바 있다.

NASA 인사 갈등, 결정적 계기

관계 악화의 결정적 계기는 머스크 측 인사였던 재러드 아이잭먼이 NASA 국장직 후보에서 철회된 사건으로 보인다. 백악관 관계자에 따르면 트럼프는 아이잭먼의 과거 민주당 기부 이력을 문제 삼아 임명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머스크는 "정치적 보복"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머스크를 옹호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백악관 참모들이 머스크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음에도 트럼프는 대체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양측 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여파 확산... 테슬라 주가 급락, 백악관 내부 동요

이번 사태의 여파는 상당하다. 테슬라 주가는 이날 하루 14% 급락해 2020년 이후 최악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백악관 내 머스크와 가까웠던 인물들도 동요하고 있다. 머스크의 최측근으로 백악관에 파견됐던 케이티 밀러는 이미 퇴임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그녀의 남편이자 트럼프의 핵심 참모인 스티븐 밀러는 최근 머스크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머스크가 설립한 정부효율성국(DOGE) 소속 인사들도 "다음 해고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두 개의 거대한 자아가 함께 갈 수 없었다"

전 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비서실장을 지낸 마크 쇼트는 "두 개의 거대한 자아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불화는 예견됐지만, 이렇게 급격히 악화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 백악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편, 머스크는 SNS를 통해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투표를 게시했으며, 이에 대해 억만장자 마크 쿠반은 동의의 표시로 세 개의 체크 표시를 남겼다. 트럼프 지지 성향이 강한 스티브 배넌은 팟캐스트를 통해 "머스크의 이민자 신분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갈등을 더욱 격화시켰다.

이날 백악관 인근에 주차된 트럼프의 붉은색 테슬라 차량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이를 둘러싼 농담이 백악관 참모들 사이에서 오갔다는 사실은 이제 두 사람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다는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