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투자·채용 동결... 소비자 지출이 경기 유지 관건
미국 경제가 다시 한 번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2023년과 2024년에 반복된 경기침체 우려를 가까스로 피한 미국은 2025년 여름, 트럼프 행정부의 급변하는 무역·관세 정책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지난 5월 고용은 13만9,000명 증가하며 안정세를 보였고, 실업률도 4.2%로 유지됐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외형적 지표 속에 기업 투자 위축, 소비자 신뢰 저하,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관세 혼란에 기업들 "투자·채용 중단"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본사를 둔 **육가공 설비업체 울트라소스(UltraSource)**의 존 스타(John Starr) 대표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며 채용과 설비 투자를 전면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에서 이미 발주한 2,000만 달러 규모의 주문에 대해, 4월 9일부터 적용된 10%의 수입 관세로 20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며 "1년치 순이익이 날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도 트럼프가 뭘 할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수개월 동안 중국, 유럽, 남미 등 주요 교역국에 대한 관세를 잇따라 인상했다. 한때 대중(對中) 관세는 145%까지 인상됐고, 지난달에야 30%로 하향 조정됐다. 이처럼 급변하는 관세정책은 기업들의 경영계획 수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비컨 이코노믹스(Beacon Economics)의 크리스토퍼 손버그 대표는 "트럼프도 본인이 내일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이 장기 전략을 세우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지출·금융시장에 달린 경기 방향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로 빠질지 여부는 결국 소비자 지출에 달려 있다고 본다. 휴스턴의 부동산 개발회사 캠든 프라퍼티 트러스트(Camden Property Trust)의 리크 캠포 CEO는 "소비자가 지갑을 열고 있는 한, 우리 세계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소비자 부채 연체율은 상승세이며, 저소득층 가계의 재정 악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레드핀(Redfin)에 따르면, 미국 주택시장에서는 매도자가 매수자보다 50만 명 이상 많은 상황이며, 올해 주택 가격은 1%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불안 요인 3가지
경제학자들은 현재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세 가지 주요 위험요소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 고용시장 반전 가능성
- 기업들은 여전히 인력 감축을 꺼리고 있으나, 수요 위축이 장기화될 경우 대규모 해고 도미노가 발생할 수 있음.
- 소비자 반발 및 지출 위축
-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격 인상에 대해 소비자들이 한계에 도달할 경우, 기업 수익성 악화 및 지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음.
- 금융시장 충격 리스크
- 연준이 지난해 기준금리를 1%p 인하했으나, 올해는 금리 동결 기조. 장기금리가 높아지면 주식시장 및 부동산 투자에 타격이 불가피.
"기업들, 아무도 장기 계획 못 세워"
볼티모어에 위치한 철강 수입·유통기업 타이탄스틸(Titan Steel)의 빌 허튼 대표는 "인력을 줄일 수는 있지만 너무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그 누구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관세를 25%에서 50%로 인상했다. 이에 따라 국내 생산업체에는 수혜가 예상되지만, 자동차·음료캔·철강 가공업체 등은 수익성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백악관 "관세는 협상 수단"... 기업 "불확실성 감당 못 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스티븐 미란은 "관세는 공급망 재조정에 대한 신뢰성 있는 위협 수단"이라며 "상대국들이 자국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게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울트라소스의 스타 대표는 "예상치 못한 3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떠안은 상황에서, 법인세 감면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20% 관세라도 좋으니, 최소한 정책의 일관성이라도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조금만 진정되면 2~3년 더 갈 수도"
Beacon Economics의 손버그 대표는 "미국 경제는 아직 모멘텀을 갖고 있다"며 "만약 트럼프가 관세 정책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면, 지금의 확장세는 2~3년 더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반대로 "계속해서 정세를 뒤흔든다면, 내년 초에도 침체는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