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Sanae Takaichi)의 역사적 총선 압승으로 식료품 소비세 감세 공약을 이행할 정치적 여건이 마련됐지만, 재원 조달을 둘러싼 논쟁이 금융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9일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총선 다음 날인 9일 기자회견에서 식료품에 부과되는 8% 소비세(consumption tax)를 2년간 중단하겠다는 기존 공약을 재확인했다. 그는 이를 "오랜 숙원(long-cherished dream)"이라고 표현하며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압도적 의석 확보로 정책 추진력 강화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ic Party, LDP)은 8일 실시된 총선에서 연정 파트너와 함께 중의원(lower house)에서 3분의 2가 넘는 슈퍼메이저리티(supermajority)를 확보했다. 이는 주요 입법을 야당 반대 없이 밀어붙일 수 있는 수준이다.

다카이치 총선 승리
(일본 총선 다카이치 압승. AP)

이번 승리는 가계의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감세 공약이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한 결과로 평가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책임 있고 선제적인 재정 정책(responsible, proactive fiscal policy)이 정책 전환의 핵심"이라며, 재정 긴축에 치우친 기존 정책 기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국채 발행 없다"... 시장은 일단 안도

다카이치 총리는 감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신규 국채 발행(fresh debt issuance)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여야 간 논의(cross-party debates)를 통해 사회복지(social welfare)와 조세(taxation) 전반을 재검토하고, 비세수 수입(non-tax revenues)이나 기존 보조금(subsidies) 삭감 등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시장에 일종의 신호로 작용했다. 일본 증시는 사상 최고치(all-time peaks)로 치솟았고, 초장기 국채(super-long bonds)는 초반 약세를 만회했다. 외환 시장에서는 일본 재무성의 구두 개입(verbal warning) 이후 엔화(yen)도 강세를 보였다.

감세 비용 연 5조 엔... 남은 숙제는 재원

문제는 규모다. 식료품 소비세 중단으로 발생하는 세수 공백은 연간 약 5조 엔(5 trillion yen), 달러로는 약 320억 달러($32 billion)에 달한다. 이는 일본의 연간 교육 예산 전체에 맞먹는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보유한 1조4천억 달러($1.4 trillion)의 외환보유액(foreign exchange reserves)을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을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일본이 미국 국채(U.S. Treasury)를 매각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켜 워싱턴과 글로벌 금융시장에 파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민의 선택은 받았지만, 시장의 신뢰는 아직"

전문가들은 다카이치 총리의 강력한 정치적 입지가 오히려 당내 재정 긴축파(fiscal hawks)의 저항을 약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BNP파리바(BNP Paribas)의 일본 수석 이코노미스트 고노 류타로(Ryutaro Kono)는 "선거 결과로 소비세 감세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며 "총리는 재무성 중심의 기존 재정 운용 방식을 바꾸려는 의지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시장의 시선은 여전히 냉정하다. 픽테 자산운용 일본(Pictet Asset Management Japan)의 이치카와 신이치(Shinichi Ichikawa)는 "다카이치는 국민의 위임(mandate)은 얻었지만, 시장의 신뢰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며 "재정 악화 우려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수입 물가가 오르고, 이는 감세 효과를 상쇄해 오히려 지지율을 깎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총선 압승으로 정치적 장애물은 사라졌지만, 재정 지속 가능성(fiscal sustainability)을 둘러싼 시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