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크 업계에서 인공지능(AI) 활용이 선택이 아닌 '의무'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권장 수준을 넘어, 직원들의 AI 사용 여부를 추적하고 성과평가에 반영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 보도했다.
중소 스타트업부터 빅테크까지, AI 활용 능력은 이제 채용과 승진, 연봉 평가의 핵심 지표로 부상했다.
성과평가에 'AI 점수' 도입...채용도 AI 역량 중심
WSJ에 따르면, 300명 규모의 디지털 마케팅 스타트업 컨덕터(Conductor)의 최고경영자(CEO) 세스 베스머트닉은 올해부터 전 직원의 성과평가에 'AI 역량 점수(1~5점)'를 도입했다. 단순 사용을 넘어 타인의 업무 흐름까지 개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최고 점수를 받는다.
채용 기준도 강화됐다. 지원자는 AI 도구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하며, 사용한 프롬프트와 도구 선택 이유까지 설명해야 한다. 베스머트닉은 "당근과 채찍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며 "AI 역량이 없는 지원자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빅테크도 본격 추적...대시보드·코드 라인까지 측정
대형 기술기업들도 AI 사용을 적극적으로 측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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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산하 AWS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AI 도구 사용 현황을 대시보드로 관리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성과평가에 직접 반영되지는 않지만, 승진 심사 시 AI 적극 활용 여부가 고려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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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은 올해 처음으로 일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성과평가에 AI 활용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팀과 매니저의 재량에 따라 평가 요소로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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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Platforms는 새 성과평가 시스템에 AI 사용 데이터를 포함했다. 엔지니어가 AI로 작성한 코드 라인 수까지 추적할 수 있으며, 직원이 스스로 영향력을 분석하도록 돕는 도구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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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 역시 성과 논의 과정에서 AI 활용도를 정량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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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force는 내부 대시보드에 'AI 숙련도 진행 상황 추적기'를 추가했다. 회사 측은 "AI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체로 성과가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세일즈포스의 경우, 유급휴가 신청이나 자기평가 작성도 AI 에이전트를 통해 진행하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회사는 사실상 "거의 100%" 직원이 어떤 형태로든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ROI 압박..."내부에서 못 쓰면 외부 판매도 어렵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과 시장조사기관 GBK 콜렉티브 조사에 따르면, 테크·통신 기업의 약 절반이 생성형 AI 투자에서 긍정적인 수익률(ROI)을 보고하고 있다. 이는 전체 산업 평균(35%)보다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빅테크 기업이 AI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에 'ROI 증명' 압박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 기업은 AI 도구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만큼, 내부에서 성공 사례를 보여주지 못하면 고객 설득도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직원 불안도 확산..."AI가 내 일자리 줄일까"
그러나 AI 확산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테크 종사자의 42%가 "직속 상사가 일상 업무에서 AI 사용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이는 8개월 전 32%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문제는 직원들의 심리다. 경영진이 "AI로 인력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AI를 도입하려는 동기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 조성이 중요하지만, 대규모 조직일수록 실험과 실패를 포용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AI 거부자는 오래 못 버틴다"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의 앤드루 애너그노스트 CEO는 AI 도입 초기에는 일부 코딩 도구가 보안 문제로 차단되자 직원들이 몰래 사용하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회사는 단순 도구 배포 대신, AI가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특정 워크플로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는 "항상 소수의 AI 거부자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AI 역량'이 새로운 기본 요건
이제 실리콘밸리에서 AI는 추가 스킬이 아닌 기본 요건이 되고 있다. 단순한 기술 숙련을 넘어, 조직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능력이 평가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AI를 적극 활용하는 직원은 승진과 보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고, 그렇지 못한 인력은 도태 위험에 직면하는 구조가 빠르게 굳어지는 모습이다.
AI가 산업을 바꾸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장 내 권력 구조와 평가 기준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