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일부 고령 근로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대신 조기 은퇴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 보도했다.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 이전 기술 혁신을 모두 경험했던 이들조차 AI 시대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직장을 떠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WSJ에 따르면, 루크 미셸(Luke Michel)은 이미 두 차례의 기술 혁신을 겪은 인물로 1980년대 데스크톱 출판, 이후 온라인 출판까지 경험했지만 AI는 다르다고 느꼈다.

그가 근무하던 다나-파버 암 연구소(Dana-Farber Cancer Institute)가 지난해 일부 직원에게 조기 은퇴를 제안하자, 68세인 그는 당초 계획보다 은퇴 시점을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몇 년 더 일할 계획이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용어와 기술을 배우는 데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럴 가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인공지능. 자료화면)

미셸은 AI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앤스로픽(Anthropic)의 '클로드(Claude)'를 활용해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다만 AI가 업무 전반을 바꿔놓는 과정까지 감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그는 "AI를 나를 위해 사용하는 건 괜찮지만, 남을 위해 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55세 이상 노동 참여율 하락...20년래 최저

미국에서 55세 이상 노동자의 비중은 2010년대 약 40% 수준을 유지하다가 최근 37.2%로 하락했다. 이는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주택 가격 상승과 주식시장 수익으로 형성된 재정적 여유가 은퇴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경제학자들과 은퇴 컨설턴트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일부 고령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는 돈만이 이유가 아니다. 이들은 경력의 마지막 시기에 AI 도입이라는 큰 변화와 불확실성을 겪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새로운 도구와 기대치, 그리고 업무 환경 변화가 동시에 밀려오면서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은퇴 심리 전문가인 로버트 로라(Robert Laura)는 사람들이 직장 내 핵심 요소가 동시에 흔들릴 때 은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자율성이 약화되거나 동료들이 떠나거나 회사 방향에 동의하지 못하는 상황이 겹치면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한다"며 "AI는 이런 요소를 동시에 흔드는 큰 변수"라고 말했다.

"예전과 다르다"...기술 변화 피로감

미셸 역시 과거에는 기술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인물이다. 1980년대 데스크톱 출판 도입 당시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며 새로운 기술을 익혔고, 인터넷 등장 이후에도 변화에 적응했다. 당시에는 동료들과 함께 배우는 과정 자체가 동기부여가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이제는 예전처럼 에너지가 오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자원봉사, 예술 활동, 오페라 관람, 지역 노인위원회 활동 등 개인적인 삶에 시간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 은퇴자협회(AARP)가 지난해 50세 이상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예상보다 빨리 은퇴를 계획한 사람 가운데 25%는 업무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이미 은퇴한 사람의 약 절반은 재정적 여유가 있어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AI 활용 격차...세대 간 차이 뚜렷

연구에 따르면 고령층은 젊은 층보다 AI 활용 비율이 낮다. 2025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 조사에서 30~49세의 약 30%가 직장에서 챗GPT(ChatGPT)를 사용한다고 답한 반면, 50세 이상에서는 그 비율이 절반 수준에 그쳤다.

또한 맨파워그룹(ManpowerGroup)이 19개국 1만3,9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에서 AI 기술 활용에 대한 자신감 하락폭이 가장 컸다.

맨파워그룹의 전략 책임자 베키 프랭키비츠(Becky Frankiewicz)는 "기업들이 고령 근로자에게 기존 역량을 충분히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투자하겠다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I로 글 쓰기 싫다"...가치관 충돌도 영향

제니퍼 컨스(Jennifer Kerns) 역시 AI에 대한 회의감으로 직장을 떠난 사례다. 60세인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산하 개발 플랫폼 깃허브(GitHub)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하다 지난달 퇴사했다.

그는 예술가 집안 출신으로, AI 모델이 창작자들에게 보상 없이 지식재산을 학습하는 방식에 불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AI가 인간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깃허브가 AI 제품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직원들에게 업무 전반에 AI 활용을 요구하면서, 그는 점점 더 부담을 느꼈다. 직원 설문조사에서는 AI 사용 수준을 1~5점으로 평가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동료들이 보고서 작성에 챗GPT 사용을 권유했지만, 그는 "사용 방법도 모르고, AI로 글을 쓰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 자격이 가까워질 때까지 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녀 교육이 마무리되고 주식 보상도 일부 확정되면서 경제적으로 은퇴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퇴사 후 첫 계획은 스코틀랜드로 혼자 여행을 떠나 스웨터 수선 기술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두고 "AI의 정반대"라고 표현했다.

기업은 반기는 측면도..."자연 감원 효과"

일부 기업들에게는 이러한 조기 은퇴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동시장 분석 기관 버닝 글래스 연구소(Burning Glass Institute)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개드 레바논(Gad Levanon)은 "더 많은 사람이 은퇴할수록 기업이 직접 해고해야 할 인원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기술에 능숙한 근로자들조차 AI 변화에 부담을 느끼고 떠나는 사례도 있다. 40년간 IT 업계에서 일한 테리 그림(Terry Grimm)은 지난해 5월 65세로 은퇴했다. 그의 회사가 대형 기업에 인수되면서 AI를 포함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업무에 통합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주 40시간 일하고 추가로 20시간을 교육과 학습에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건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아내와 함께 텍사스에서 아칸소주 엘도라도(El Dorado) 골프장 인근 주거단지로 이주해 생활하고 있다.

AI 확산이 노동시장 구조뿐 아니라 세대 간 근로 지속 여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인력 구성 변화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