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가 중동산 원유 공급 차질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 보도했다. 

이미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휘발유 가격을 부담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운전자들에게 추가적인 가격 상승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WSJ에 따르면, 원유 운반선 뉴 코롤라(New Corolla)가 롱비치항에 도착해 이라크산 원유를 하역하면서 캘리포니아는 사실상 마지막 중동산 원유 입항분을 받아들였다.

New Corolla
(New Corolla. Vessel Finder)

시장정보업체 보텍사(Vortexa)와 케이플러(Kpler)는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더라도 중동산 원유를 실은 다음 유조선이 캘리포니아에 도착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동 원유 의존도 높은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 다른 어떤 주보다도 중동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다. 주내 원유 생산업체들이 이탈하고 1980년대 중반 이후 수십 곳의 정유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캘리포니아는 소비 원유의 약 7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가운데 거의 3분의 1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지역에서 들어온다.

가스버디(GasBuddy)의 패트릭 드한(Patrick De Haan) 애널리스트는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물류 흐름이 재개되기까지 한두 달이 걸릴 것"이라며, 이후에도 밀린 공급을 따라잡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 코롤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처음 공격하기 며칠 전 이라크 바스라항을 출발했으며, 지난 2월 28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이 유조선은 약 200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거쳐 6주 동안 항해했으며, 지난달 일부 화물을 하역한 뒤 금요일 롱비치항에서 나머지 원유를 내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휘발유 평균 6.16달러...전국 평균보다 1.61달러 높아

캘리포니아의 에너지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요일 기준 캘리포니아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6.16달러로 미국 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전국 평균보다 약 1.61달러 높은 가격이다. 디젤 가격도 갤런당 7.48달러로 전국 평균보다 약 1.82달러 높았다.

정제유 재고도 빠르게 압박을 받고 있다. 항공유와 디젤 등 정제 제품의 공급이 줄어드는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연료 공급국들이 자국 에너지 공급 보호를 위해 캘리포니아 수출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보텍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5월 캘리포니아로 들어올 정제유는 하루 약 3만5,000배럴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4월 하루 10만 배럴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정유시설 폐쇄도 공급난 악화

캘리포니아의 공급난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은 정유시설 감소다. 최근 6개월 사이 주내 주요 정유시설 두 곳이 폐쇄되면서, 캘리포니아의 연료 생산 능력은 거의 5분의 1가량 줄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곧 다시 열리더라도 이미 세계 시장에서 최소 10억 배럴의 원유 공급이 지연되거나 차단된 상태라고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존스법 면제와 비상조치 동원

캘리포니아는 일부 구제를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중순 존스법(Jones Act)에 대해 60일간 면제 조치를 내렸다. 존스법은 1920년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당시 대통령 시절 도입된 법으로, 미국 항구 간 화물 운송을 미국 선박으로 제한하는 규정이다.

이번 면제 조치로 기업들은 더 큰 외국 선박을 이용해 멕시코만 연안에서 캘리포니아로 원유와 연료를 운송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평소 수익성이 낮았던 해당 운송 경로의 경제성을 개선하는 효과를 냈다.

마라톤 페트롤리엄(Marathon Petroleum)을 포함한 미국 정유업체들은 3월 중순 이후 약 12척의 외국 선박을 이용해 멕시코만 연안에서 서부 지역으로 연료를 보냈다. 이 선박들은 파나마운하를 거쳐 캘리포니아로 약 200만 배럴의 휘발유, 휘발유 혼합 원료, 항공유, 바이오디젤 등을 운반했으며, 일부 물량은 알래스카 등 다른 주로도 향했다.

다만 캘리포니아는 통상 하루 100만 배럴 이상의 정제유를 소비한다. 셰브론(Chevron) 대변인 로스 앨런(Ross Allen)은 "선박 확보와 위치 문제가 지금까지 존스법 면제 조치가 제공할 수 있는 구제 효과를 제한해왔다"고 말했다.

해상 파이프라인 재가동...하루 5만 배럴 공급

트럼프 행정부는 또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활용해 세이블 오프쇼어(Sable Offshore)의 해상 파이프라인 재가동을 허용했다. 이 법은 비상 상황에서 대통령이 물자 흐름을 신속히 조정할 수 있도록 한 냉전기 법률이다.

해당 파이프라인은 2015년 해안 오염을 일으킨 원유 유출 사고 이후 캘리포니아 규제당국에 의해 폐쇄된 상태였다. 현재는 하루 5만 배럴의 원유를 캘리포니아로 공급하고 있다.

셰브론은 이 원유 일부를 엘세군도 정유공장으로 들여오고 있다. 마이크 워스(Mike Wirth) 셰브론 최고경영자는 이달 초 실적 발표에서 "우리는 그곳의 공급 의무를 충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가 "수십 년간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에 만들어진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에너지 정책 책임 공방도 격화

셰브론은 100년 넘게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석유회사로 여겨졌지만, 주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오랜 갈등 끝에 2년 전 본사를 휴스턴으로 이전했다. 회사 측은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금과 강한 환경 규제가 정유업체들의 이탈을 초래했고, 이것이 높은 휘발유 가격의 원인이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개빈 뉴섬(Gavin Newsom)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롯한 주정부 관계자들은 석유회사들이 오랫동안 가격을 부풀려왔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에는 뉴섬 주지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캘리포니아 연료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엑스(X)에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아무리 말을 돌려도, 미국인들이 지난주 그의 재앙적인 이란 전쟁 때문에 휘발유에 15억 달러를 추가로 지불했다는 사실은 가릴 수 없다"고 썼다.

미국 내 원유 붐에서도 고립된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는 텍사스, 뉴멕시코 등 미국 내 산유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대규모로 들여올 수 있는 송유관망이 충분하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 내 원유 생산 붐의 혜택에서 사실상 고립돼 있다.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의 높은 해외 원유 의존도가 이번 호르무즈 해협 차질 사태에서 다른 주보다 더 큰 취약성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해협이 닫혀 있는 한 캘리포니아는 빠르게 줄어드는 공급을 대체하는 데 계속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보텍사의 로히트 라토드(Rohit Rathod) 애널리스트는 중동에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추가 물량에 대해 "현재 항로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