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수비대 권한 확대·미사일 생산 증대·홍해 전선 확장..."본격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인식 확산
이란 강경 지도부가 미국과의 전쟁을 끝내기보다 더 큰 충돌에 대비해온 정황이 포착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 보도했다. 미국과 이란이 지난 6월 중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전쟁 완화를 목표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이란 강경파는 이를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확전 준비에 나섰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아랍 정보당국은 이란과 예멘·이라크 등 역내 친이란 민병대 사이의 통신 등을 통해, 이란 강경 지도부가 미군과 미국의 지역 동맹국들이 치러야 할 비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이란 측 준비에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에 정규군에 대한 더 큰 통제권을 부여하고, 이란·이라크 전쟁 참전 경력이 있는 강경 인사들과 과거 국내 시위 진압을 주도한 인물들을 핵심 보직에 배치하는 조치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국내 방첩 활동 확대, 미사일과 드론 생산 증대, 홍해와 걸프 지역으로의 전장 확대도 추진됐다.
MOU 이후에도 전쟁 준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17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이란과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미국 정부는 이 합의가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고 전쟁을 단계적으로 끝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합의는 이란이 원유를 판매할 수 있도록 제재 예외를 제공하고, 동결 자금 수십억 달러에 접근할 수 있게 하며, 이란 재건을 위한 3,000억달러 규모 기금 가능성을 열어주는 내용을 담았다. 이란의 핵심 의무는 호르무즈 해협을 선박 통행에 개방하고, 핵 프로그램에 대해 선의로 협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란 강경 지도부는 이 합의를 전쟁 종식의 계기로 보지 않았다고 WSJ는 전했다. 이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세계 경제 압박을 줄이고, 향후 더 큰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시도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이란은 협상에 기대를 걸기보다 지난 두 달 동안 더 큰 충돌을 준비했다는 것이 보도의 핵심이다.
혁명수비대, 역내 민병대와 공격 확대 논의
WSJ에 따르면 혁명수비대는 MOU로 조성된 일시적 완화 국면을 이용해 이라크, 예멘, 레바논 등지의 친이란 세력과 공격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아랍 정보당국이 확보한 통신 정보에는 혁명수비대가 예멘 후티 반군이 통제하는 지역에 지휘관들을 보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대결 확대를 준비한 정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은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와도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혁명수비대는 홍해를 내려다보는 지역에 미사일, 해상무기, 드론 발사대를 배치하도록 감독했으며, 후티 반군에 정보와 표적 목록을 제공했다고 관계자들은 밝혔다. 표적 목록에는 사우디 항구와 에너지 시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7월 말까지 예멘 전선의 충돌은 확대됐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군을 공격했고, 홍해와 세계 시장을 연결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사우디에 대해 폐쇄한다고 선언했다. 후티는 사우디 선박에도 공격을 가해, 사우디의 원유 수출 우회 통로를 위협했다.
사우디·걸프 에너지 시설도 위협
비슷한 시기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가 자국 석유 시설에 드론 공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WSJ는 혁명수비대가 걸프 국가들에 대해 미국이 이란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할 경우, 자신들도 걸프 국가들의 에너지 시설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일부 아랍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란 측은 개별 표적 목록까지 전달했다.
걸프 지역 당국자들은 이란 미사일이 미국 방공망을 피해 요르단, 쿠웨이트, 바레인 등지의 목표물을 더 정밀하게 타격하는 모습을 보며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란은 최근 2주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던 아랍에미리트 선박 6척을 공격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혁명수비대 대변인 호세인 모헤비 준장은 7월 혁명수비대 계열 타스님통신 인터뷰에서 "우리는 휴전 기간을 충분히 활용했다"며 "능력을 강화하고 미사일 생산 속도를 높였으며 미사일 정확도도 개선했다"고 말했다.
"본격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란 내부에서는 지금까지의 충돌을 더 큰 전쟁의 전 단계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테헤란에 있는 정부 측 방위 분석가 모하마드 하산 상타라시는 "이란에는 본격적인 전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공격들이 더 큰 충돌에 앞서 상대의 능력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로 해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인식은 워싱턴과 테헤란이 현 전쟁 국면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MOU를 통해 전쟁 완화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기대했지만, 이란 강경파는 이를 더 큰 공격 전의 시간 벌기로 의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7월 초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안내하던 선박을 공격하자 이란 지도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외교관들이 평화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최고 지도부 차원에서 안보기구를 확전 체제로 전환하고 있었다.
군 지휘체계도 강경파 중심 재편
이란 지도부는 최근 군과 안보기구의 핵심 보직도 강경파 중심으로 재편했다.
모흐센 레자이(Mohsen Rezaei)는 이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국가안보회의 서기로 임명됐다. 그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혁명수비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최고국가안보회의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단계적으로 개방하는 합의 진전을 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안보 강화를 위해서는 2009년 반정부 시위 진압을 주도했던 호세인 타에브(Hossein Taeb)가 바시즈(Basij) 조직 수장으로 복귀했다. 이란 지도부는 바시즈를 "대중 정보망"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쟁 과정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이란 내부 깊숙이 침투했다는 판단에 따른 대응으로 해석된다.
또 혁명수비대 출신의 알리 압돌라히 준장이 정규군과 혁명수비대의 통합 지휘를 맡게 됐다. 그는 페르시아만 주변 미군 기지를 수용한 아랍 국가들에 대한 공격을 강하게 주장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마드 바히디(Ahmad Vahidi)는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에 공식 임명됐고, 임명령에는 "적에 대한 강력한 공세 작전"을 수행하라는 임무가 명시됐다. 바히디의 보좌관인 모하마드 레자 나그디 장군도 혁명수비대가 적 영토 안으로 작전을 확대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쿠웨이트·바레인 등도 긴장
혁명수비대는 추가 확전 계획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페르시아만 인터넷 케이블 파괴, 쿠웨이트와 바레인 등 시아파 공동체가 있는 국가에서 정치적 불안을 조성하는 방안, 쿠웨이트 내 지상 작전 가능성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쿠웨이트는 이런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5월 쿠웨이트는 혁명수비대원 6명이 임대한 어선을 이용해 자국 섬에 상륙하려다 적발됐다고 밝혔다. 일부 이란 정치 인사들은 미국이 이란 영토나 카르그섬 같은 핵심 지역을 위협할 경우, 혁명수비대가 이라크 남부를 경유해 지상 급습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걸프 지역 당국자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혁명수비대 역량에 어느 정도 타격을 줬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혁명수비대가 패배하거나 억제된 것은 아니며, 호르무즈에 대한 장악력이 오히려 이란의 지역적 지위를 강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협상파는 경제 붕괴 경고
이란 내부가 모두 확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대통령을 포함한 보다 실용주의적 인사들은 전쟁을 끝내고 제재 완화를 얻어내는 협상이 필요하다고 반복적으로 경고해왔다. 이들은 협상이 실패할 경우 이란 경제가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란은 동시에 군사 기반을 빠르게 복구하고 있다. WSJ는 이란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인프라를 재건하고 미사일 기지 접근을 복원하고 있으며, 이 점이 이스라엘 당국자들에게 우려를 주고 있다고 전했다.
전직 미 고위 외교관이자 대이란 핵협상가였던 앨런 아이어(Alan Eyre)는 이란 정권의 기본 전제는 "전쟁"이라며, 이란은 계속 전시 태세를 유지하고 다음 공격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르무즈 합의도 혁명수비대가 제동
협상 중재자들에 따르면 이란 외교관들은 이달 초 오만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 통행로를 설정하고 감독해 단계적으로 해협을 재개방하는 합의에 접근했다.
그러나 이 노력은 혁명수비대에 의해 막혔다. 이후 혁명수비대는 다시 선박 공격에 나섰다.
협상이 막히고 이란이 확전 태세를 거두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경제적 압박 쪽으로 물러선 상태다. 미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와 미 해군의 이란 항구 봉쇄가 이란의 입장을 누그러뜨릴지 지켜보려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란 지도부는 트럼프의 의도를 깊이 의심하고 있으며, 장기 버티기를 위한 "생존 경제"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결론: 협상은 진행됐지만 전쟁 준비는 더 빨랐다
이번 보도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외교 협상과 군사 확전 준비가 동시에 진행되는 위험한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6월 MOU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전쟁 완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란 강경파는 이를 신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시간을 혁명수비대 중심의 군사 재편, 미사일·드론 생산 확대, 역내 민병대 동원, 걸프와 홍해 전선 확장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내부의 실용주의 세력은 경제 붕괴를 우려하며 협상을 원하지만, 안보 강경파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더 큰 대결에 대비하고 있다.
그 결과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홍해, 이라크, 예멘, 요르단, 걸프 국가들은 하나의 연결된 전장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단기적인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지속 가능한 종전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란 측 협상팀 관계자는 현재 교착 상태를 "폭풍 전야"라고 표현했다. 이 말처럼 중동 전쟁은 협상 국면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충돌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단계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