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푸틴과의 관계 강화하고 외화벌이 확대...러시아 노동력 부족도 메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의 전쟁 경제를 지원하고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수천 명의 북한 노동자를 러시아에 파견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공장과 물류창고에 배치된 여성 노동자를 포함한 북한 근로자들이 이제 우크라이나의 공격 위험에 직접 노출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근무 지역이 더 이상 우크라이나 전쟁의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보도했다.
올여름 러시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와일드베리스(Wildberries)가 소유한 물류창고 약 20곳이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공격을 받았다.
현장 영상을 확인한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공격받은 시설 가운데 최소 한 곳에서는 북한 여성들이 일하고 있었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 공격으로 최소 9명이 숨지고 와일드베리스의 대형 물류창고 대부분이 운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사망자들의 국적은 공개하지 않았다.
공격 위험에도 불구하고 와일드베리스의 북한 인력 고용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의 한 구인 사이트에는 지난 8월 와일드베리스 물류창고에서 근무할 한국어 통역사를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와일드베리스는 관련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김정은의 주된 동기는 노동자 안전 아닌 돈"
김정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미사일과 병력을 제공한 데 이어 노동자까지 대규모로 보내고 있다. 노동자 파견은 북한 정권에 외화를 벌어다 주는 동시에 푸틴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반면 이러한 움직임은 경제적·외교적 목표를 위해 북한 주민들을 위험에 노출하는 김정은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세종연구소의 피터 워드(Peter Ward) 연구위원은 "김정은의 주된 관심사는 북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문제가 아니다"며 "그의 동기는 재정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러시아에 파견된 것으로 추산되는 병력 약 1만5,000명 가운데 몇 명이 귀환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지난 3월 평양에서 전사한 북한군을 기리는 추모시설을 공개했으며, 이곳에는 수백 개의 묘가 조성됐다.
일부 북한 주민은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을 포함한 11개국이 참여해 북한의 제재 위반을 감시하는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은 1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의 드론 생산공장에서도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러 첫 도로교 개통...하루 2,300명 통행 가능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지난주 양국을 연결하는 첫 도로교가 개통되면서 한층 강화됐다.
두만강 위에 건설된 왕복 2차선 도로교는 길이가 약 0.5마일에 이른다.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이 교량은 하루 최대 차량 300대와 2,300명 이상의 통행을 처리할 수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 확대를 통해 두만강 건너편의 또 다른 이웃 국가인 중국의 전통적인 영향력을 견제하고 대외 지원 창구를 다변화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에는 북한 노동력이 절실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의 노동력 부족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노동부는 2030년까지 약 1,100만 명의 신규 노동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러시아는 수십 년 동안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유입되는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전쟁 이후 러시아 민족주의가 확산하고 이주노동자들이 군 복무를 강요당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중앙아시아 노동자들이 러시아 대신 다른 국가로 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최대 3만 명 추산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은 약 1만5,000∼3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평균 연간 수입은 약 7,500달러로, 중국에서 근무하는 북한 노동자보다 최대 5배 많다.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은 지난해 최대 8억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이 자금은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북한 해외 노동자로 일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최대 90%를 가져간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러시아 건설 현장에 남성 노동자를 파견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성 노동자 파견을 늘리며 외화 수입원을 다변화하고 있다고 피터 워드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올해 러시아 농업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통역사로 일한 러시아 대학생 알리사 스비토바(Alisa Svitova·21)는 북한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생산시설 옆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책임자와 요리사, 통역사, 의사, 작업반장과 함께 집단으로 러시아에 입국한다. 일부는 '감사합니다', '좋습니다', '쌀'과 같은 기본적인 러시아어 표현을 배우기도 한다.
스비토바는 "많은 노동자가 러시아에서 일하는 것이 러시아를 돕고 양국 간 우호관계를 증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엔 제재 피해 '교육비자'로 위장
러시아 영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가 북한 주민에게 발급한 비자는 3만6,000건을 넘었다. 이는 2024년의 네 배에 해당한다.
대부분은 교육비자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북한 노동자 고용 사실을 감추기 위해 교육비자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엔 제재는 북한 정권 소속 노동자가 해외에서 소득을 올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러시아 취업 알선업체와 구인 공고를 보면 북한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러시아 기업 관리자들은 외국 인력을 공급하는 업체인 MMC 퍼스널(MMC Personnel)이 운영하는 온라인 대화방에 거의 매일 북한 노동자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러시아의 한 대형 수산물·캐비아 가공업체 대표는 이달 텔레그램의 MMC 퍼스널 대화방에 북한 여성 노동자 30명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게시했다.
이 업체는 캐비아 생산시설에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한국어 자막이 들어간 애니메이션 영상을 사용한다. 업체 대표는 북한 노동자들을 "생산성이 높고 규율이 잘 잡혀 있다"고 평가했다.
월 1,800달러 제시...북한군 급여와 비슷
북한과 러시아를 연구하는 한국 동서대학교의 크리스 먼데이(Chris Monday) 부교수는 러시아 공장에 배치될 때의 위험이 노동자들의 지원을 막지는 못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자들이 러시아행을 하나의 기회로 생각하는 데다 자신들이 처할 위험을 충분히 알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데이 교수는 "김정은에게는 좋은 돈벌이"라며 "노동자들에게는 북한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지난 8월 모스크바의 한 인력업체는 북한 여성 40명으로 구성된 노동팀을 소개하는 광고를 냈다. 이들은 요리사와 컨베이어 생산라인 작업자, 섬유 노동자로 일할 수 있다고 소개됐다.
광고에 제시된 급여는 월 약 1,800달러였다. 이는 한국 국가정보원이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이 받는 것으로 파악한 월 2,000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 7월 말에는 모스크바 지역의 한 군사 공군기지 인근 육류가공시설에서 북한 무용수들이 공연했다. 1950∼1953년 한국전쟁 정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열린 공연이었다.
러시아 집권당 관계자들이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영상에는 러시아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러시아와 북한 국기 앞에서 춤추는 모습이 담겼다. 객석에서는 수십 명의 북한 여성들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러시아 측 게시물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은 해당 공장에서 실무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 공장의 한 생산라인 작업자는 "우리 한국인 동료들은 매우 규율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며 근면하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인력난과 북한의 외화 확보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북한 노동자 파견은 앞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공격 범위가 러시아 내륙의 공장과 물류시설로 넓어지면서, 북한 노동자들도 전쟁의 직접적인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