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성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평화협상에서 시간을 끌 여유를 주고 있다.
하지만 군수산업에 의존하게 된 경제 구조는 전쟁을 끝내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일부 인접국들은 러시아의 전쟁경제가 향후 자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 초기부터 국가를 장기전 대비 태세로 전환시켰다. 경제는 대규모 탱크와 자주포 생산에 맞춰 재편되었고, 1년치 연봉에 달하는 계약금을 제공하며 대규모 병력 확보에 나섰다. 한때 하루에 1,0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린 시점도 있었다.
이러한 조치는 러시아가 3년 전 키이우 점령에 실패한 뒤 입은 초기 손실에서 벗어나는데 기여했다. 지금은 러시아군이 서쪽으로 다시 진격하며 지난 한 달 동안 100제곱마일 이상의 영토를 확보했다.
이 같은 성과는 푸틴에게 평화협상에 즉각 임할 필요성을 줄였고, 유럽의 압박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급함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느긋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푸틴이 실제로 평화를 선택한다면, 그동안 구축해온 군사 중심 경제를 되돌리는 일은 훨씬 복잡할 것이다.
유럽정책분석센터(CEPA)의 선임연구원 알렉산더 콜리얀드르는 "지금 러시아에게 군수산업 의존은 필수적이며, 이는 이미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며 "당분간 군비 지출을 줄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군수산업은 지난 수년간 수십억 달러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생산라인을 24시간 풀가동 중이다. 이 자금은 군 입대 보상과 경쟁하기 위한 임금 인상에도 활용됐으며, 열악한 지역의 수만 가구에 실질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가져왔다.
미국 부통령 JD 밴스는 교황 레오 14세와의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푸틴이 전쟁을 어떻게 끝낼지에 대한 전략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푸틴이 트럼프의 휴전 중재안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추정했다.
트럼프는 푸틴의 전쟁 지속에 대해 점차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주말에 올린 SNS 게시글에서 푸틴이 "미쳐버렸다"며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고, 화요일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내가 없었다면 러시아는 지금보다 훨씬 끔찍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 푸틴은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이 끝난다면, 러시아 이웃국들 사이에서는 그 다음 화살이 자신들을 향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에서는 군 관계자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영토로 전쟁이 확산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대규모 러시아계 인구 문제를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다.
이 같은 불안은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수만 명의 군인들, 특히 단기 계약으로 입대한 병력들이 국내로 돌아올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내부적 긴장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스탈린은 복귀한 참전 군인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많은 수를 굴라그(강제수용소)로 보냈다.
현재 상황에서도, 전쟁이 끝난 뒤 수십만 명의 군인이 민간인으로 복귀해야 하며 이는 임금 상승 둔화 및 경기 침체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볼로디미르 이셴코(독일 자유대학교)는 "이들의 임금을 단기간에 급격히 삭감하는 것은 좋은 방안이 아니다"라며 "국가가 무장한 이들을 실망시키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설령 전투가 종료되더라도, 러시아군은 병력을 계속 필요로 할 것이며, 군수산업 또한 소련 시대 재고 무기를 대체하기 위한 생산을 계속하겠지만, 전시만큼의 속도는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생산라인에서의 해고와, 이미 정체되고 있는 경제 흐름 속에서 불만이 확산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이번 전쟁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가장 큰 부의 재분배를 불러왔다는 평가도 있다.
모스크바 전략기술분석센터의 소장 루슬란 푸호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존재론적 위기가 없다면, 이처럼 방대한 국방비 투입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며 "푸틴은 독재자라 불리긴 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고 말했다.
이미 전쟁과 급여 인상으로 촉진됐던 생활 수준의 상승세는 둔화되고 있으며, 유가 하락은 러시아 경제의 미래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일부 군수업체는 과잉 생산된 무기들을 수출해 전쟁 전 러시아가 유지하던 세계 2위 무기 수출국의 지위를 회복하고자 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 시장 점유율 상실, 신용에 의존하는 구매국들, 품질보다 양에 치중한 생산 방식 등으로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러시아는 현재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혹은 전쟁 전 독일과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군사기술 발전이 민간 부문으로 확산돼 인터넷, 페니실린 같은 기술 혁신으로 이어졌지만, 러시아의 방위산업은 그럴 가능성이 낮다.
민간 부문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계란과 감자 등 기초 생필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군수산업의 축소는 불가피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의 충격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향후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콜리얀드르는 "재정지출 축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며 "이 군사경제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