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축통화 지위 흔들리면 글로벌 톱 지위에도 타격 발생 우려한듯
러 "달러 대안 찾아야" 선포...中, 주변국서 위안화 결제 늘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非)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를 향해 꺼내든 '100% 관세 부과' 위협은 '달러 패권'이 흔들릴 경우 미국의 글로벌 최강국 지위도 타격받을 수 있다는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오랫동안 자국 통화인 달러를 기축 통화로 유지하며 누려온 정치·경제적 특권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조짐이 보이자 지난달 30일(토) '초강수 관세 부과 카드'를 꺼냈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브릭스 국가 정상들 앞에서 달러화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발언하고, 중국이 주변국들을 대상으로 위안화 결제를 확대해나가는 상황이 이어지자 미국이 위기의식을 느껴 내놓은 조치로 분석됐다.
달러의 위상이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대체적 전망 속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위협이 어디까지 실현될지, 향후 달러화의 기득권에 과연 균열이 생길 수 있을지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러시아의 반격...80년 역사 달러 시스템 흔들릴까
지난 10월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달러의 무기화'를 언급하면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전쟁을 일으켜 달러 거래 제한을 받은 러시아가 80년 역사의 달러 기반 국제 결제 시스템을 굳건하게 지켜온 미국에 사실상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달러화의 독점적 위치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가 처음은 아니지만, 브릭스의 경제 규모가 주요 7개국(G7)보다 큰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최후통첩과 같은 메시지가 나오자 시선을 끌고 있다.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 이후 현재까지 미국은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 결제 시스템을 주도하고 있다.
국제 무역결제는 물론이고 원유와 금 같은 상품, 나아가 무기 거래도 달러 결제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은 비정상적인 자금조달과 제재 회피 징후를신속히 포착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중앙은행의 외화보유액 가운데 달러화 비중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올해 브릭스 정상회의는 미국 달러 패권 흔들기의 전초전으로 평가됐다. 달러 결제와 다른 브릭스 자체의 결제 시스템 구축방안이 집중 논의됐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됐다. 또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약 3천억달러에 달하는 러시아 자산을 동결한 상태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현재 중국 위안화를 주로 결제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루블과 중국의 위안 거래는 급증했다.
지난해 중국과 러시아 간 무역규모는 2천400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로서는 서방 제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달러 결제 시스템의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몰렸다. 이를 해결할 공간으로 브릭스가 활용되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1992년 세계 GDP에서 G7 비중은 45.5%였고 브릭스 국가들 점유율은 16.7%였다. 2023년에는 브릭스 비중은 37.4%, G7은 29.3%를 차지한다"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 위안화 결제로 '금융 국경' 넓혀가는 中
미국과 패권경쟁에 나선 중국의 도전은 더 직접적이다. 중국은 적극적인 통화 스와프 체결을 통해 아랍권과 중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위안화 결제율은 지난 7월 4.7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결제율에는 아직 비교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갈수록 그 비중이 높아가고 있어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디지털 화폐를 통해 달러 지배력 약화를 시도하고 있다. 막대한 달러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최근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하고 디지털 화폐 보유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등 대외 거래에서 서로의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 사용을 시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달러 자산 비중을 줄이고 디지털 위안화를 국제 결제 시스템의 중심으로 만들려는 중국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새로운 경제질서를 구축해 미국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브릭스 국가들에 대한 100% 관세 엄포에 대해 중국 정부는 아직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로 그 어느 때보다 미중관계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실제로 내년에 어떤 수준의 정책이 실현될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특히 중국에서는 최근 14년 전 미중관계를 예측한 기사가 최근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2010년 10월 발간된 '환구재경'이라는 잡지는 '질적 변화로 향하는 미중관계'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패권 국가인 미국이 자신의 패권을 빼앗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데, 그 표적은 미국을 거의 따라잡고 있는 중국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주로 다뤘다.
◇ "달러 위상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vs "트럼프 위협 발언은 美 패권에 대한 불안감"
브릭스의 도전과 디지털 화폐 결제의 확대라는 도전 요소가 있지만 아직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브릭스 국가들이 달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미국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당선인은 "새로운 자체 통화든, 기존 통화든 브릭스가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려는 브릭스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관세 카드'가 최고의 무기로 등장한 점이 특징이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과거보다 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펼칠 것임을 예고하고 있어 달러의 위상에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전문가들은 주시하고 있다.
중국 현지 매체들은 "트럼프의 이러한 위협적 발언은 미국의 패권 유지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다"거나 "역사적으로 패권주의적인 억압은 지속되기 어려우며, 오늘날처럼 각국 상호 의존도가 높을 때 경제 경제 체제의 다원화는 필연적인 흐름이다"라고 보도했다.
달러 결제 시스템을 굳건히 지키려는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 러시아의 움직임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세력 경쟁과 경제 안보 이슈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